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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5년前 日 大使 테러 엄벌했더라면

바람아님 2015. 3. 16. 19:37

(출처-조선일보 2015.03.16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
문갑식 선임기자
짐을 챙기는데 맥이 탁 풀렸다. 조국은 김기종(56)이 활개치던 곳이었던 것이다. 
이 테러범이 무슨 단체의 장(長)이란 직함을 가졌고 '진보(進步) 인사'로 대접받았으며 일부 정치인이 
후원금까지 보태줬다는 그 한심한 땅으로, 나는 돌아가야 했다.

평생 본 것인데 생소했다. "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에 불과했구나" 하는 실감(實感),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것은 진실이다. 도버해협을 떠나 대한해협으로 가는 공중에서 펼쳐든 신문도 
잠시 잊었던 진실을 맹렬히 쏟아내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 내부에 테러범을 '열사(烈士)' '죄는 밉지만 사람만은…' 하며 감싸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열사의 공화국'으로 복귀하며 냉소(冷笑)를 느꼈다. 무표정한 가부키(歌舞伎) 가면, 
그 뒤에서 일본인들이 짓는 비웃음이다.

일본인들은 "이게 바로 한국의 수준"이라며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일본의 신문기자라면 '백주(白晝)의 칼질'을 이렇게 비아냥댔을 것이다. 
"일부 한국인은 김기종을 과거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윤봉길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일(對日) 항쟁사는 초라해질 것이다. 
무고한 이들을 참수해 온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동급으로 전락할 것이다. 
왜 우리는 극일(克日)을 외치며 손해 보는 일만 도맡아 저지르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한국은 우리에게 안 돼"라며 고개를 젓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일본의 신문기자였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켜 왜 한국의 대통령이 자기들에겐 가지 않고 
미국 대사에게만 병문안 갔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할 것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은 2010년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테러'를 
가한 인물이다. 당시 한국 사법 당국이 준엄하게 단죄했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한국에서는…."

이런 사실이 재조명되는 순간 우리가 그간 일본에 가한 압박은 명분을 잃을 것이다. 
대체 일본 대사와 미국 대사의 경우는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것인가? 
불행한 것은 우리 사회는 이런 '조롱'에 대응할 준비가 안 됐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당해도 싸다" "과거 침략도 반성하지 않는 주제에…"라고 호통치는 것? 
그게 아니면 "일본 대사와 미국 대사의 경우는 본질이 다르다"는 항변일 텐데 이런 모호한 반격이 공감받을 곳이 
우리 내부 외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5년 전 사건에 대해 한마디 언급 없이, 일본에 간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내놓은 발언만 열렬히 해석하고 있다. 
그게 세계가 전부 우리를 편드는 것으로, 일본을 준엄히 꾸짖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을 것이다.

정확히 300일간, 영국에 머물며 느낀 것은 영불(英佛)·영독(英獨)·독불(獨佛) 3개국의 과거사가 한·일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원한이 맺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3개국 주민들이 서로 '이놈 저놈' 폄하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역사를 잊어서가 아니다. 상대를 완전히 용서해서도 아니다. 3개국 주민들은 '감정'보다 '이성', '욕설'보다 '법률', 
'대립'보다 '화해'가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냉정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게 지금의 EU를 만드는 초석이 됐다.

어차피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서로 마주 보지 않고는 살아갈 재간이 없는 우리와 일본이다. 대한해협이 가까워지는 
귀국 길에서 나는 우리가 좀 더 영악하고 '계산'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바다에 던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