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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 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바람아님 2015. 4. 19. 10:22

[J플러스] 입력 2015-04-14

 

一片花飛減却春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 빛이 줄거늘
風飄萬點正愁人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杜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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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여 년 전 흩날리던 벚꽃이 오늘도 흩날린다.
오늘날 사람들은 쾌락을 찾는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이익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고, 이것이 ‘극단’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쾌락 또한 극단적,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이 원함이 Extreme Sports를 만들고, 폭력성, 선정성이 강조된 미디어물이 넘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면서 무한한 욕망을 채워나가려고 노력한다. 그런 우리에게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수채화로 살짝 채색한 듯이 가지들과 땅에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며 목련을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이 세상에 색을 더한다. 그들은 인위적이거나, 선정적이거나, 극단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 (물론 그들의 배열, 구성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할 수 있을지라도) 그들의 아름다움은 엄연히 자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극 속의 사람들이 열광하며 찾는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추위를 몰아내는 온화함 속으로 들어가서는 봄 내음에 취하고 자연이 선사하는, 인간으로서는 그려내기 힘든 아름다움에 경탄한다. 인위적인 미적 기준에는 시대적 흐름, 유행이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더 새로운 것을 찾거나, 보지 못하고 있던 새로움을 발견하면서 끊임없이 다름을 추구한다. 아무리 유행하는 옷이더라도 매해 3월이 되면 다시 사람들이 열광하는 옷은 거의 없다. 그런데 봄, 꽃은 인간의 역사에 비추어봐도 아주 오랫동안, 아직까지도 매년 사랑을 받는다. 심지어 벚꽃과 마음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노래도 몇 년 째 봄만 오면 다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봄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위대함이 아닐까?


이 아름다움에 취하는 사람들은 건강해 보인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웃는 이의 미소는 자연스러우며 아름답다. 사람들이 잃어갔던, 혹은 잊고 살았던 자연성을 회복하는 시공간이 열린 듯이 보인다. 그렇기에 이 축복 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놓쳐버릴 것 같은 순간을 잡는 것도 충분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항상 한 가지는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항상 있어온 것이라 해서 항상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대한 경계’이다. 2008년 2월 10일, 우리는 그것이 있음 자체가 축복인 문화유산이자 국보1호인 숭례문을 허망하게 잃었다. 이는 우리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항상 있어온 것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안일한 환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도 어느 날엔가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그 날을 슬퍼할 수 밖에 없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평정을 유지해야 할 기후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꽃의 개화시기들도 그로 인해 변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자연이 인내심을 갖고 우리에게 주는 조언일지 모른다. 국보의 소실에 대해 사람들은 그나마 문화재청에 비난의 손가락을 올릴 수 있었지만, 봄을 잃으면 그 비난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향기에 취하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큼 자연의 조언도 들어야 한다. 


잃은 뒤에 그 빛을 되찾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선조가 지었던 숭례문도 그러한데, 봄 빛은 오죽하겠는가?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축복의 당연함을 지킬 수 있도록, 1300년 전 두보의 시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도록 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이 봄에겐 필요하다.


글 : 고려대학교 철학과 박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