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4-19
역사적으로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의미를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논박한 것에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변방에 위치한 지구에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은 당시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불완전한 4원소가 존재하고 오히려 중심에서 떨어진 천구가 완전한 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꼭 더 고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우주에서의 인간 지위가 매우 특별하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가 속속 발견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독특한 설명 원리도 제안되었다.
일단 지구의 위치와 궤도가 특별하다. 태양으로부터 거리와 태양 주위를 도는 방식이 인간의 생존에 딱 '안성맞춤'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생존하는 데는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에게 다행스럽게도 지구는 이렇게 딱 알맞은 소위 '골디락스 영역'에 위치해 있다. 또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타원 궤도는 충분히 원에 가까워 연중 태양에서 오는 열에너지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는 여름에는 바다가 모두 끓어 넘치고 겨울에는 전체가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는 불모의 행성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우리에게 무척 다행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우주론적으로는 '우연적' 사실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첨 확률이 낮은 복권이라도 누군가는 당첨되기 마련인 것처럼, 우리 우주에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조건이 있는데, 마침 지구가 '우연히' 인간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갖추었고, 그래서 인간이 지구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복권 당첨자는 자신이 무언가 '특별해서' 이런 일확천금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된 것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황은 이보다 더 미묘하다. 우리 우주에 작용하는 기본 힘의 세기조차 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한 핵력이나 전기력의 크기가 만약 현재 값에서 조금만 달랐다면, 별 내부에서 탄소처럼 무거운 입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이들 원소가 초신성 폭발을 통해 우주 전역에 흩어져 행성을 만드는 데 재료로 사용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결국 우리 우주는 드넓은 공간에 물질만 흩어져 있는 '심심한'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학적 사실에 직면하면,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절대존재가 인간을 위해 자연법칙과 환경 조건을 섬세하게 배려했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즉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인간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인간의 생존에 우호적인 물리화학적 환경은 생명의 존재를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주의 구성과 자연법칙이 무언가를 위해 존재한다면, 그 무언가는 인간이 아니라 생명 전체라고 말해야 옳다.
게다가 이렇게 목적론적으로 강하게 인간 원리를 해석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자연법칙과 초기 조건이 다른 우주가 여럿 존재할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복권 당첨의 상황을 수많은 우주의 집합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즉 수많은 우주에서 생명 및 인간에게 적합한 우주는 매우 적지만, 우리가 마침 그 낮은 확률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증거는?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수많은 우주의 집합에서 어떻게 확률을 정의할 것인지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적, 과학적 난제를 제기한다.
인간원리를 목적론적으로 강하게 해석하든 확률론적으로 약하게 해석하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인간의 존재는 '우주적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1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더 새롭게 느껴진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그런데 묘하게도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우주에서의 인간 지위가 매우 특별하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가 속속 발견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독특한 설명 원리도 제안되었다.
이런 점들이 우리에게 무척 다행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우주론적으로는 '우연적' 사실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첨 확률이 낮은 복권이라도 누군가는 당첨되기 마련인 것처럼, 우리 우주에는 행성이 존재할 수 있는 수많은 조건이 있는데, 마침 지구가 '우연히' 인간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갖추었고, 그래서 인간이 지구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복권 당첨자는 자신이 무언가 '특별해서' 이런 일확천금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된 것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상황은 이보다 더 미묘하다. 우리 우주에 작용하는 기본 힘의 세기조차 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한 핵력이나 전기력의 크기가 만약 현재 값에서 조금만 달랐다면, 별 내부에서 탄소처럼 무거운 입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이들 원소가 초신성 폭발을 통해 우주 전역에 흩어져 행성을 만드는 데 재료로 사용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인간을 비롯한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결국 우리 우주는 드넓은 공간에 물질만 흩어져 있는 '심심한'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학적 사실에 직면하면,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절대존재가 인간을 위해 자연법칙과 환경 조건을 섬세하게 배려했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즉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인간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인간의 생존에 우호적인 물리화학적 환경은 생명의 존재를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주의 구성과 자연법칙이 무언가를 위해 존재한다면, 그 무언가는 인간이 아니라 생명 전체라고 말해야 옳다.
게다가 이렇게 목적론적으로 강하게 인간 원리를 해석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자연법칙과 초기 조건이 다른 우주가 여럿 존재할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복권 당첨의 상황을 수많은 우주의 집합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즉 수많은 우주에서 생명 및 인간에게 적합한 우주는 매우 적지만, 우리가 마침 그 낮은 확률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증거는?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수많은 우주의 집합에서 어떻게 확률을 정의할 것인지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적, 과학적 난제를 제기한다.
인간원리를 목적론적으로 강하게 해석하든 확률론적으로 약하게 해석하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인간의 존재는 '우주적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1년 전 억울하게 희생된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더 새롭게 느껴진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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