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경화가
많은 이들 앞에 벗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그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시선을 허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수치심을 극복하고 벗은 몸을 통해 작품이 잘 나오게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일이 그들의 직업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들의 도움으로 인물화를 제작해 왔음에도 늘 그들의 용기에 놀라워하고 또한 그들이 내뿜는 카리스마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 왔다.
우리 수업은 누드 드로잉을 통해 학생들이 해부학적 구조와 인체의 움직임을 짧은 시간에 표현하도록 훈련시킨다. 인물이라는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순발력 있는 표현을 통해 미술가로서의 직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과 나는 새로운 모델이 대(臺) 위에서 가운을 걸치고 우리를 맞이할 때마다 그의 몸이 전해 줄 에너지에 설레고, 그것에 반응할 화면들의 멋진 드로잉을 기대한다.
누드모델들은 우리 수업의 목적에 맞게 선별되고 초대된다. 그래서 그들은 당연히 우리의 지시대로 벗고 동작을 취한다. 모델은 그리는 사람의 의도에 잘 맞춰 줄수록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평가는 모델의 수동성 정도에 좌우된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더 훌륭한 모델은 그리는 사람의 의도를 능가한다. 그는 고스란히 드러난 알몸으로 실기실의 공기를 장악하고 오히려 마치 우리가 그의 지시를 받는 대상이 되게 한다. 여기서 뛰어난 모델은 능동적일수록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델은 스스로 독창적인 몸짓을 한다. 때로는 자신을 그리려는 의도를 미리 해석해서 도구와 음악을 활용하기도 한다. 어떠한 상황이든 숙련된 모델은 그들만의 독특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 같다. 간혹 나는 그들의 포즈와 나의 캔버스 사이에서 감당 못할 감흥에 빠져들곤 한다. 그것은 일치감임과 동시에 너무나 생소한 새로움이다. 나의 드로잉은 도화지 위를 스치는 내 손길의 속도와 내 호흡과 내 심장의 고동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어떤 화가는 이 감흥을 연인과 나누는 사랑의 과정과 같다고 말한다.
삶은 무수히 다양한 몸짓으로 구성된다. 모델은 바로 이 움직임으로 그가 지닌 에너지를 화가에게 전하고 또한 화가는 그것을 그의 호흡으로 기록한다. 그 결과물인 인물화를 통해 관람자는 애초의 몸짓을 깨닫게 된다. 누드화의 감동은 바로 이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삶을 구성하는 몸짓을 알게 하는 소중한 직업-그것이 바로 누드모델인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삶은 곧 몸짓과 그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철저하게 각인시킨 역사적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985~38)이다.
그녀는 로트레크,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파 거장들의 뮤즈였고 그들의 그림 속에 매번 등장한다.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불우한 환경, 그리고 심각한 부상에 따른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상파 화가들과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을 자극했다. 그녀가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그녀의 몸짓은 단순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벗은 모습으로 자신을 당당히 주장하는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그녀가 18세에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낳은 아이가 바로 몽마르트의 풍경화로 유명한 인상파화가 위트릴로(Maurice Utrillo)다.
발라동은 모델에만 머물지 않고 화가들의 어깨너머로 직접 회화를 배웠고 그의 아들과 전시회를 가졌다. 그녀는 미혼모로 배가 부른 자신의 몸을 당당히 자화상으로 그리기까지 했다. 모델로서 그녀의 삶은 관찰의 대상에서 표현의 주체로 나아간 과감한 실천들로 채워져 있다. 나의 수업에서, 그리고 나의 작업실에서 내가 만나는 누드모델들이 전하는 에너지는 발라동과 같은 선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르누아르가 자신을 아름답게만 그린 것을 지적하면서 발라동은 말했다. “그림 속 나는 아름답다. 하지만 과연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일까?”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