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25
통계로 한번 따져보자. 1호 메르스 환자가 중동 여행 뒤 귀국한 5월 4일 이후 50일이 되는 23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대한민국 인구 5061만 명 중 확진환자가 175명 나왔다. 총인구의 0.0000035%를 조금 넘는 비율이다. 사망자는 27명으로 하루 평균 약 0.5명꼴이다. 2013년 한국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하루 평균 교통사고는 16.5명, 자살은 39.5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를 적용하면 지난 50일간 교통사고로 793명, 자살로 1897명이 숨졌을 것이다(올 6월 중에는 나들이 감소로 운전이 줄어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감소할 전망이라고 한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자살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숨진다는 내용을 메르스 사태처럼 24시간 보도하진 않는다. 메르스는 진짜 고민할 이슈를 가려버렸다. 핵심은 어떻게 메르스가 한국에서 이렇게 확산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분석일 것이다. 전염병 관리대책의 허점은 무엇인지, 관련 부처와 기관의 책임자와 관계자들의 대응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며칠 전 한국에 와 있는 친구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친구는 휴가차 제주도에 갔다가 몸이 좋지 않아 메르스 핫라인으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30분이나 대기한 끝에 가까스로 연결된 통화에서 “주소지가 경기도”라고 했더니 “경기 핫라인으로 전화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다시 기다리고 기다려 경기 핫라인과 연결했더니 이번엔 “지금 제주도에 있으니 제주 핫라인으로 전화해야 한다”고 하더란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대응 시스템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지금 메르스로 불편을 겪고 있지만 에볼라가 한국을 덮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메르스는 한국이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준비가 취약하다는 점과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인 규범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것이 국민과 언론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할 진짜 이슈일 것이다. 반드시 해결책을 마련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제임스 후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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