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6-22
한국과 일본이 기본조약에 서명함으로써 국교를 정상화한 지 오늘로 꼭 50주년이다. 국교정상화로 한국은 일제 36년 식민통치의 구원(舊怨)을 뒤로하고, 일본과 손을 잡았다. 양국 관계의 부침과 관계없이 함께 경축하고 기념해야 할 날임에 틀림없다. 역대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이 오늘 서울과 도쿄에서 열리는 경축 리셉션에 교차 참석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한·일 관계의 경색을 푸는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다 되도록 양국 간에는 정상회담 한 번 없었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처럼 누구보다 자주 만나야 할 사이다. 이런 비정상이 없다. 국민 감정도 악화되고 있다. 일본에 호감을 느낀다는 한국 국민은 6%, 한국에 호감을 느낀다는 일본 국민은 10%에 불과하다. 싫든 좋든 이웃하고 살 수밖에 없는 한·일 관계가 이렇게 가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다.
한쪽만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렵다. 경중(輕重)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해 온 양국 지도자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든 개인적 신념 때문이든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극한 대결로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죄악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양국 지도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의미를 되살려 진정한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돌파구를 양국 정상이 열어야 한다.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은 위안부 문제다. 한국 국민의 73%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관계 개선의 열쇠로 여기고 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어제 일본에 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 외상과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외교 협상에서 100% 완승이란 있을 수 없다. 쉰 분밖에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일본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보상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재론하지 않는 선에서 대타협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 하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다. 내용과 수위를 놓고 아베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한국인들이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도록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확실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담으면 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정상회담을 재개하고, 한·일 관계의 새 출발을 선언하기 바란다.
한국인의 87%, 일본인의 64%가 양국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 양국 지도자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책무가 있다. 양국 정상이 참석하는 서울과 도쿄의 국교정상화 50주년 리셉션은 한·일 관계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사적 시발점이 돼야 한다.
[사설]국교수립 50년, 한일관계 정상화 미룰 수 없다
동아일보 2015-06-22
돌이켜보면 한일 국교정상화는 필요의 산물이었다.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해 일본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고, 일본 역시 한반도 분단과 냉전 구도 아래 안보와 정치적 안정, 경제적 협력과 분업을 위해 한국과 화해가 필요했다. 동북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면 미국의 주도 아래 한미일의 반공(反共) 공조 체제가 필수였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일 기본조약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갈등의 씨앗을 남겼다. 오늘날 전쟁과 인권에 대한 인식은 50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하다. 과거의 반(反)인륜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끌어올리는 일임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활발한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최고지도자들의 언행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12월 정권 출범 1주년을 맞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을 비롯해 한일 화해의 토대를 흔드는 역사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12년 8월 독도 방문과 일본 국왕의 사죄 발언 촉구로 일본을 자극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사 문제와 기타 현안을 분리 대응하겠다면서도 ‘과거사 문제 해결’의 전제를 강조해 한일 정상의 대화를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한 것은 두 나라의 전략적 협조가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을 달성하려면 한국은 주변국과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다. 일본과 척을 진 상태에서 평화통일이 가능할 리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양국은 북핵 문제 대응을 비롯해 원자력 이용, 글로벌 감염병과 재난 대처 등에서도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들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오늘 각각 서울과 도쿄에서 열리는 상대국 주최 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것은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다. 두 정상의 교차 참석이 양국의 갈등 해소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에서 제외한 것도 불가피한 일로 보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외상과 만났다.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조선인이 끌려가 강제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표시하기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맞아 8월에 발표할 담화는 양국 갈등 해결에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올 3·1절 기념사에서 제시한 ‘한일 미래 50년 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난관을 무릅쓰고 정상화했던 한일관계를 박근혜 대통령이 회복함으로써 ‘아버지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했으면 한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갈등에서 화해로 돌아서는 기회로 만들 책임이 양국 지도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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