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7.25
스테판 해거드/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중국의 부상은 한국 외교 정책의 향방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은 중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중국의 점증하는 경제적·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서울이 국익을 굽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조용히 한·미 동맹을 강화해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일까.
여러 이슈를 검토해 보면 이런 식의 단순화된 문제 설정이 한국의 선택을 왜곡한다는 게 드러난다. 한국이 대면하고 있는 도전은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한국이 갈 길은 지금까지 이롭게 작용해온 다자체제의 옹호를 포함해 국가이익에 집중하는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배치 문제 또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 중국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이 사드를 전개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지역 미사일 방어 체계와 한·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 미·중의 입장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드가 한국의 억지력을 강화하고 비용효율적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지 한국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사드는 상당한 비용으로 약간의 안보 증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리스크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내 견해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국 내 논의 과정에서 핵심은 한국 입장의 사드 비용편익 분석이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이 잘못 대처한 최근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둘러싼 논란이다. AIIB는 중국으로 하여금 다자체제의 의무에 충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당한 전략적 이익을 안겨준다. 현재 다자체제는 중국의 리더십과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향후 AIIB참여 방식은 AIIB가 동아시아에 가져올 이익에 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잠재적으로 한국이 얻을 이익은 커 보인다.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인프라 투자는 동아시아 경제를 성장시킨다. 동아시아의 성장은 한국에 이익이다.
경제 사례는 많다. 한국의 정책 수행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민첩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은 한·미 양국에 이익이지만, 경제 규모가 더 작은 한국이 얻을 게 더 많다. 또한 한·미 FTA는 한·중 FTA 나 이를 확장한 한·중·일 FTA 로 한국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에서 논란거리다.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응당 제공돼야 할 TPP 규정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없다. 한국의 TPP 참여는 군사전략적인 한·미 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TPP 협정문에 바탕을 둬야 한다. 한국의 산업계와 노동계에 미칠 이익과 불이익을 따져야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권 문제가 있다. 가장 까다로운 분야다. 민주국가인 한국은 세계의 자유 신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이 보다 투명하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는 것도 포함된다. 이웃의 거인을 상대로 자유라는 자신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의 가치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한·미 동맹 때문이 아니다. 인권은 한국이 추구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국가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는 원조, 인도주의적 지원, 평화유지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북아 지역을 넘어 국제적인 지도력을 차츰 강화해야 한다. 물론 한국은 오랜 한·미 동맹과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한·중 관계의 맥락에서 외교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한·미 동맹이나 한·중 관계가 한국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출발점은 항상 한국의 국가이익이어야 한다.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진짜 바라는 것’과 ‘필요한 것’을 분간하는 것은 의외로 힘들다. 외교정책 수립은 더 어렵다. 한데 이웃 나라들이나 동맹국들은 한국이 국익에 대해 정직하고 솔직할 때에 한국을 더 존중한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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