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윤평중 칼럼] 정치적 현실주의만이 統一 가능케 해

바람아님 2015. 7. 24. 07:28

(출처-조선일보 2015.07.24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北 붕괴 가능성 낮은 현실서 민족주의적 感傷 도움 안 돼
사드와 美 전술핵 포함해 北核 무력화 선택 열어놓고
民·官 접촉 최대한 늘려 북 市場 확대 적극 유도해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진올해로 광복 70주년이지만 통일의 길은 멀기만 하다. 

통일은커녕 한반도는 열전(熱戰)의 위기를 내장한 위태로운 냉전 상태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전 배치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데 6자회담은 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게다가 북은 평안북도 동창리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를 확장하는 중이다.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대륙간탄도탄에 가까운 신형 장거리 로켓 발사로 무력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핵 협상 과정에서 북한에 속았다고 보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획기적 대북 제안을 할 

개연성은 희박하다. 중국은 장성택 숙청 이후 북에 대한 관여 능력을 많이 잃었다. 

올 3월 부임한 평양 주재 중국 대사가 아직까지 김정은을 못 만날 정도이지만 대국굴기(大國崛起)의 

국가 전략 차원에서 냉정하게 북한을 관망하는 중이다. 

허약해진 통치 기반을 잔인무도한 공포정치로 메우는 데 급급한 김정은은 정권 안보를 위해 당분간 대남 강경책을 

밀어붙일 기세다.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는 김정은이 핵 시계를 째깍거리는 상황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작아졌다.


남북 관계의 출구를 막은 근본적 책임이 김씨 세습 정권의 핵 망상(妄想)에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핵 위기를 포함한 '북한 문제'는 우리의 운명을 가를 사안이므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북한 피로증과 북핵 무력감은 

시급히 극복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과 북한 체제가 무너져야 핵 위기가 해소되고 북한 인민의 고통이 끝난다는 

'북한 붕괴론'의 당위론적 호소력은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북한이 70년 가까이 예상을 뛰어넘는 체제 내구성으로 

버텨온 데 이어 핵무장국으로 등장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 운영의 기본은 객관적 현실 인식에 입각한 비전(vision)과 주관적 소망 사고(wishful thinking)를 구별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까운 미래에 북한 급변 사태 여지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불가피하다. 북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인센티브를 인정하는 

'포전(圃田) 담당제'의 확대로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 장마당의 비중이 커지는 것과 함께 변함없는 중국의 후견으로 

북한 사회는 그런대로 굴러가는 중이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되는 북한 붕괴론이라는 당위론적 

원칙론 대신 현실에서 작동하는 당위의 지평을 적극 넓혀가는 것이 현명하다.

좋은 의미의 정치는 이처럼 냉엄한 현실 위에 정치인의 이상을 아로새겨 가는 고난도의 창조 행위일 터이다. 

정치적 현실주의의 핵심은 비전과 현실을 잇는 지난한 고투(苦鬪)의 과정에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를 말하면서 

'한국의 마키아벨리' 이승만을 빼놓을 순 없다. 마침 지난 7월 19일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0주년 기념일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1875~1965)만큼 영욕(榮辱)이 엇갈린 인물도 드물지만 우남이야말로 

정치적 현실주의의 대가(大家)였다는 점은 명명백백하다.

이승만을 '권력욕의 화신(化身)'으로 폄하하는 것은 일면적 인식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대결하는 일을 

불가피한 것으로 본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이미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지시했다.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된 

1946년 한반도 시평(時平)에서 6월 3일 '정읍 발언'을 핑계로 분단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리는 '단정(單政) 원죄론(原罪論)'은 

역사적 사실과 충돌한다. 이승만의 '국부(國父) 의식'과 권력 의지가 숱한 분란(紛亂)과 독재의 씨앗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당대 한반도에서 보기 드문 그의 국제 정치적 식견과 결합해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보전을 가능케 한 

주체적 동력이 되었다. 민주적 통일 정부 수립이 불가능했던 당시 상황에서 대한민국 건국은 기적에 가까운 차선책이었다. 

한국 현대사는 이런 정치적 현실주의가 옳았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정치적 현실주의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과제인 통일을 추동할 견인차이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리 없으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핵을 무력화해야 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도입, 

원자력잠수함 건조, 미국 전술핵 재반입 등 모든 선택 여지를 열어놓아야 마땅하다. 

이와 동시에 북한과 민(民)·관(官) 접촉면은 최대한 늘려 북의 시장(市場)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 국가 안보가 받쳐주는 

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력에 북의 시장화가 더해진다면 한반도 통일 대장정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통일 문제에서 민족주의적 감상(感傷)은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통일의 길을 여는 것은 오로지 냉정한 정치적 현실주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