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韓.日수교50년

[동서남북] 日本의 '희생자 코스프레'

바람아님 2015. 8. 14. 07:29

(출처-조선일보 2015.08.14 김기철 문화부 차장)


김기철 문화부 차장 사진'핵(核)은 비(非)인도성의 극치' '나가사키, 살아남은 괴로움'…. 

지난 며칠 일본 신문들은 원폭 투하 70년을 맞아 앞다퉈 특집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각각 14만명과 7만명이 

목숨을 잃고 '무조건 항복'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기억일 것이다. 

폭탄 한두 개로 이렇게 많은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고,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침략 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한국을 비롯, 

아시아에서 100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가해자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라며 '희생자' 행세를 하는 건 

어딘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동시통역사이자 작가로 한국에도 고정 팬이 꽤 많은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가 쓴 책 '마녀의 한 다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90년 도쿄에서 열린 심포지엄의 통역을 맡아 일하면서 겪은 일이라고 했다. 

1945년 소련군이 만주에 진주하면서 군인을 포함한 일본인 60만명이 억류됐다. 

소련은 이들을 시베리아로 끌고 가 길게는 10년간 강제 노동을 시켰고,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 등장 후에야 억류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제스처를 했고, 적십자사와 역사학자들로 

구성한 대표단을 보내 대화를 시작했다.

심포지엄 중간 소련 역사학자가 억류자 문제의 단서가 된 경위를 보고하면서 소련군이 만주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순간 사달이 났다. 

한 참석자가 "일소(日蘇)중립조약을 멋대로 깨뜨리고는 '들어갔다'니 말이 돼?" 하는 야유를 던지면서 

장내가 걷잡을 수 없이 소란스러워졌다. 소련 역사학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지켜보다 마이크를 잡았다. 

"시끄러워! 그럼, 그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나? 당신네 안방에 있었나? 만주가 당신네 땅이란 말이야?" 

이 한마디에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던 회의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요네하라 마리는 일부 일본인들이 균형 감각 없이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몰염치를 이렇게 꼬집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중에는 징용 등으로 끌려간 조선인 7만명도 포함돼 있다.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에서 들었던 피폭(被爆) 생존자들의 육성 녹음 중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있다. 

재일(在日) 조선인의 증언이었다. "원폭 투하 당시 내가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일

본인들이 우리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 학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끔찍한 참극의 현장에서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6000명 가까운 조선인이 학살된 기억부터 떠올린 것이다.

엊그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수난을 겪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무릎을 꿇은 사진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피해 입은 쪽에서 "그만 됐다"고 말하기 전까진 사죄(謝罪)를 멈춰선 안 된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지금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는 전(前) 총리의 돌출 행위일지는 모르지만 

동아시아 평화를 바라는 한·일 두 나라 국민에겐 감동적 장면이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신뢰를 얻고 평화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희생자 코스프레'는 그만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