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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나흘 뒤 아베 총리가 뭐라 하건

바람아님 2015. 8. 10. 06:52

(출처-조선일보 2015.08.10 김수혜 도쿄 특파원)


김수혜 도쿄 특파원 사진일본을 좋아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좋아해야 깊이 알고, 깊이 알아야 정확히 쓴다. 
똑같이 한국을 비판하는 말이라도 깊이 고민한 일본인이 하는 말과 
그렇지 않은 일본인이 하는 말에는 차이가 크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사할린 동포를 오래 도운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 메이지대 교수가 
아사히신문에 "(일본도 잘못이 있지만) 한국도 피해 의식에 얽매여 있다"고 했다. 새겨들었다. 
반면 서울 특파원을 지낸 메이저 신문의 고참 기자는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쓰시마 불상 도난 사건 등 
온갖 현안을 '일본 깔보기[卑日·비일]'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뭉뚱그렸다. 
그는 '일본은 합리적인데 한국은 비합리적이고, 일본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이 도발한다'는 이분법을 세워놓고 
한국인의 열등감에서 답을 찾고 싶어했다. '오래 취재했다고 깊이 아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일요일 오후, 도쿄는 하늘이 파랗다. 
기사 쓰다 고개를 들면 조선일보 도쿄지국 통유리창 너머로 일왕이 사는 궁궐에 8월 햇빛이 쏟아진다.
그 너머에 총리 관저가 있다. 
지난 금요일 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연립 여당 대표를 만나 '반성'만 있고 '사과'는 빠진 담화 초안을 보여줬다.
그는 14일 담화를 낸다. 그새 사람이 달라질까. 아닐 것이다.

총리 관저와 지국 중간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남의 전쟁에 끌려가서 죽은 조선 청년 수만명이 '일본을 위해 죽은 영령(英靈)'으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A급 전범들과 
합사돼 있다. 종전(終戰) 석 달 전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죽은 식민지 청년 탁경현은 출격 전날 부대 앞 여관에서 
"오늘은 조선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아리랑을 불렀다. 일본인 여관 주인이 듣고 울며 기록했다. 
야스쿠니 신사 앞을 지날 때 나는 가끔 스물네 살 탁씨의 영혼에 물어보고 싶어진다. 
'아팠지요? 어머니 안 보고 싶었습니까? 그 안에서 지금 잘 지냅니까?' 
아베 총리가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낼 거라고 일본 언론이 썼다. 탁씨에게 그건 위로일까, 모욕일까. 
식민지가 된다는 건 죽어서도 위로와 모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한·일 사이엔 뛰어넘을 수 없는 벼랑이 있다. 식민 지배가 가혹했다는 것까지는 일본도 인정한다. 여러 번 사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리가 원하는 건 식민지로 만든 것 자체에 대한 사죄다. 
아베 아니라 누가 와도 이 점에 대해 일본은 '노(No)'다.

일본은 한·일 강제 병합이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못박는다. 
'고통스러웠다니 미안하지만 50년 전에 보상했으니 끝난 얘기'라고 한다. 
가장 전향적이었다는 간 나오토 담화(2010년)도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루어졌다"고 했지 강압과 협잡을 
인정하진 않았다. 
일본은 "일본더러 이걸 뒤집으라는 건 일본을 부정하란 얘기"라고 한다. 
우리도 똑같이 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더러 그 말에 "아, 그렇습니까?" 하라는 건 우리가 누구인지 부정하란 소리라고.

나흘 뒤 아베 총리가 뭐라 건 아베 또한 지나간다. 지나가지 않는 건 일본이란 나라다. 
물러설 수도 없고 건너뛸 수도 없는 벼랑을 가운데 둔 채 우리는 일본이란 나라와 싫어도 공동으로 안보와 경제를 포함한 
여러 난제를 풀어가야 한다. 숙명(宿命)이다. 우리는 강해지고 현명해지고 유연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