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5.08.16
태양이 좋은 도시 아를(Arles)은 고흐의 도시다. 고흐는 아를에서 1년 남짓 머물면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밤의 카페’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가난했고 외로웠던 고흐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정착했던 도시 아를에서, 고흐는 다시 고갱에게 버림받고 분열했다.
[포브스]
“지난 일요일 밤 11시 30분,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가 1번지 사창가에 나타났다. 그는 라셸이란 여자를 불러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잘린 귀를 내밀었다. ‘이걸 소중하게 받아줘요.’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가엾은 정신병자의 소행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을 신고받은 경찰은 다음 날 아침 그 사내의 집으로 가서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에게서는 살아있는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엾은 사내는 즉각 보호시설에 수용되었다.”
고흐 작품 200여 점의 무대
한 해를 마감하던 1888년 12월 30일, 프랑스 아를의 지역신문인 ‘르 포럼 레퓌블리깽’은 그해 12월 22일 발생한 엽기적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스스로 귀를 자른 고흐는 아를에 있는 생 테스프리 시립병원을 거쳐 이듬해인 1889년, 생 레미의 ‘생 폴 드 모슬레’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1년 뒤인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들판으로 걸어나가 자신의 가슴에 대고 총을 쐈다. 바로 죽지 않았지만 총상은 치명적이었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고흐는 이틀간 심하게 앓고 난 뒤, 동생 테오가 보는 앞에서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고흐가 입원했던 아를의 정신병원은 현재 문화센터로 개조돼 ‘반 고흐의 공간’으로 불리고 있다.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곳이다. 네덜란드 화가인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이 마을에 1년 남짓 머물면서 이 지역에 활짝 핀 해바라기와 라벤더를 포함해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아를 병원의 정원’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평생토록 그림 900여 점과 습작 1100점을 남긴 고흐는 자살 직전 10년에 작품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이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 점이 아를에서 그려졌다.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의 실제 모델인 카페 라뉘(cafe la nuit)는 이름 앞에, 영어의 더(the)에 해당하는 정관사 ‘르(le)’를 붙여 ‘르 카페 라 뉘’라는 간판을 달고, 그 밑에 ‘빈센트 반 고흐’라고 적어 놨다. 2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자부심에, 고흐의 주요 작품 무대라는 자긍심을 보탠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아를 관광청의 안내원은 “카페 라뉘에서는 사진만 찍고, 식사는 다른 데 가서 하라”고 서너 번이나 당부했다. “음식이 너무 비싼 데다 맛도 없고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원형경기장 뒤쪽으로 돌아가면 아를의 전통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며 “그쪽이 값도 싸고 맛있는 데다 친절하다”고 권해줬다. ‘오죽하면 관광청 안내원이 이렇게까지 말할까’ 싶은 생각에 호기심이 생겨, 한번 들어가 볼까 하다가 결국 가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아를은 남부 프랑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형성된 이 마을의 인구는 약 5만 명. 남프랑스 특유의 한적함과 여유를 풍겨낸다. 이 마을에 남아있는 로마의 흔적은 지금도 뚜렷하다. 한복판에 자리한 원형극장은 BC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1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원형극장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원형경기장은 100년 뒤인 AD 90년에 지어진 것으로, 무려 2만1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로선 상당한 규모의 시설이다. 이 원형경기장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중에서는 콜로세움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것이라고 한다. 이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골목길이 형성돼 있고, 그 틈새로 주택, 카페, 호텔, 상점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아를을 찾은 7월 1일은 프로방스 지역에 이상 폭염이 닥친 날이었다. 수은주가 섭씨 41도를 기록한 이 날, 깨어 움직이는 사람은 관광객들과 어린이들밖에 없어 보였다. 아를 시민들은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실내로 들어가 늘어져 있는 듯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가게와 카페 직원들뿐, 더위를 견디다 못한 아이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시청 앞 분수로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얼른 나오라며 경찰이 난리를 칠 법도 하건만, 아를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들을 막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흥미롭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남부 프랑스 특유의 여유와 정감은 우편엽서에서도 나타났다. 그림엽서 자체를 파는 다른 지방과 달리, 수십 년 전 연인들이 주고받았던 실제의 ‘연애 엽서’를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부분 배우자나 연인에게 그리움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것. 펜에 잉크를 묻혀 손으로 쓴 고풍스러운 필체에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느껴졌다. 가격은 장당 1~3유로(1100~3300원). 상점 주인은 폐지를 상품화하는 기발한 상술을, 관광객은 수십 년 전 사랑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로마 시대부터 유명한 와인 생산지 ‘생시니앙’
아를에서 몽펠리에를 지나 까흐까손으로 가다 보면,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 싶은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온다. 랑거독 루시옹이라 부르는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도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인 ‘생시니앙(Saint Chinian)’ 마을이다.
이 마을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산지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와인을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로마의 웅변가인 시세로(BC 106~BC 43)가 생시니앙 와인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지나친 과잉생산으로, 잠시 싸구려 취급을 받는 ‘모멸’을 겪었던 이 지역 와인은 1951년 프랑스 와인의 두 번째 최고등급인 VDQS를 받고 1982년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원산지 통제표시등급)로 선정되면서 수천 년 전의 영예를 회복했다.
이 지역은 피레네 산맥이 뻗어 내려온 산골 마을이다. 와인 관계자들 외에는 마을을 찾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이 오래된 마을을 찾은 것은 ‘강아지도 잠을 잔다’는 시각인 오후 1시 30분경. 관광안내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 한 사람이 “2시 30분까지 휴식”이라며 “그 이후에 오라”고 하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약간 출출하기도 했고 목도 말라, 마을 복판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생과일 살구 주스가 3.5유로, 커피가 2.5유로로 저렴했다. 하지만 품질은 가히 최고였다. 직접 갈아 낸 듯한 살구 맛이 관광객의 여독을 씻어주는 듯했다. 오가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이색적이다.
- 버림받고 분열했다.
글·사진=이범진 여행칼럼니스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무대가 된 카페 라 뉘.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북적된다.
“지난 일요일 밤 11시 30분, 빈센트 반 고흐라고 불리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가 1번지 사창가에 나타났다. 그는 라셸이란 여자를 불러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잘린 귀를 내밀었다. ‘이걸 소중하게 받아줘요.’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가엾은 정신병자의 소행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을 신고받은 경찰은 다음 날 아침 그 사내의 집으로 가서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에게서는 살아있는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가엾은 사내는 즉각 보호시설에 수용되었다.”
카페 라 뉘를 그린 고흐의 작품‘밤의 카페테라스’(왼쪽) / 아를 마을의 골목길. 예쁘게 색칠된 좁다란 골목길이 정겹다.
고흐 작품 200여 점의 무대
아를에 있는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 중에서는 콜로세움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곳이다. 네덜란드 화가인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이 마을에 1년 남짓 머물면서 이 지역에 활짝 핀 해바라기와 라벤더를 포함해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아를 병원의 정원’ 등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평생토록 그림 900여 점과 습작 1100점을 남긴 고흐는 자살 직전 10년에 작품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이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 점이 아를에서 그려졌다.
아를 시청 앞에 있는 분수대. 41도의 폭염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분수대에 뛰어들어 강아지와 놀고 있다.
아를은 남부 프랑스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형성된 이 마을의 인구는 약 5만 명. 남프랑스 특유의 한적함과 여유를 풍겨낸다. 이 마을에 남아있는 로마의 흔적은 지금도 뚜렷하다. 한복판에 자리한 원형극장은 BC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1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 원형극장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원형경기장은 100년 뒤인 AD 90년에 지어진 것으로, 무려 2만1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로선 상당한 규모의 시설이다. 이 원형경기장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의 원형경기장 중에서는 콜로세움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것이라고 한다. 이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골목길이 형성돼 있고, 그 틈새로 주택, 카페, 호텔, 상점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아를을 찾은 7월 1일은 프로방스 지역에 이상 폭염이 닥친 날이었다. 수은주가 섭씨 41도를 기록한 이 날, 깨어 움직이는 사람은 관광객들과 어린이들밖에 없어 보였다. 아를 시민들은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실내로 들어가 늘어져 있는 듯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이스크림 가게와 카페 직원들뿐, 더위를 견디다 못한 아이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시청 앞 분수로 뛰어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얼른 나오라며 경찰이 난리를 칠 법도 하건만, 아를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들을 막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흥미롭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도 그저 빙그레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남부 프랑스 특유의 여유와 정감은 우편엽서에서도 나타났다. 그림엽서 자체를 파는 다른 지방과 달리, 수십 년 전 연인들이 주고받았던 실제의 ‘연애 엽서’를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부분 배우자나 연인에게 그리움을 전하며 안부를 묻는 것. 펜에 잉크를 묻혀 손으로 쓴 고풍스러운 필체에서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느껴졌다. 가격은 장당 1~3유로(1100~3300원). 상점 주인은 폐지를 상품화하는 기발한 상술을, 관광객은 수십 년 전 사랑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카페가 모여있는 아를 시내의 모습.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지만, 생각만큼 북적이거나 혼잡하지는 않다.(왼쪽) / ‘고흐의 방’ 고흐는 자신이 머물렀던 아를의 방을 그림으로 남겼다.
로마 시대부터 유명한 와인 생산지 ‘생시니앙’
이 마을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산지다. 고대 로마 시절부터 와인을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로마의 웅변가인 시세로(BC 106~BC 43)가 생시니앙 와인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지나친 과잉생산으로, 잠시 싸구려 취급을 받는 ‘모멸’을 겪었던 이 지역 와인은 1951년 프랑스 와인의 두 번째 최고등급인 VDQS를 받고 1982년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원산지 통제표시등급)로 선정되면서 수천 년 전의 영예를 회복했다.
이 지역은 피레네 산맥이 뻗어 내려온 산골 마을이다. 와인 관계자들 외에는 마을을 찾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이 오래된 마을을 찾은 것은 ‘강아지도 잠을 잔다’는 시각인 오후 1시 30분경. 관광안내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직원 한 사람이 “2시 30분까지 휴식”이라며 “그 이후에 오라”고 하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약간 출출하기도 했고 목도 말라, 마을 복판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생과일 살구 주스가 3.5유로, 커피가 2.5유로로 저렴했다. 하지만 품질은 가히 최고였다. 직접 갈아 낸 듯한 살구 맛이 관광객의 여독을 씻어주는 듯했다. 오가다 마주치는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이색적이다.
- 버림받고 분열했다.
글·사진=이범진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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