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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성공회의 전통 정원

바람아님 2015. 8. 20. 07:20

(출처-조선일보 2015.08.20 김태익 논설위원)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성공회(聖公會) 대성당 수녀원의 대문은 대개 굳게 닫혀 있다. 
점심때 두 시간쯤만 일반에게 열린다. 의젓한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기와를 인 야트막한 한옥들이 처마를 잇고 마당엔 푸른 잔디가 정갈하다. 잘 다듬은 한국식 정원이다. 
소나무·배롱나무·감나무·진달래…. 나무도 우리 토종이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때를 벗는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다.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1926년 영국인 트롤로프 주교 때 지었다. 
옥스퍼드대를 나온 트롤로프는 영국 왕립 건축가협회 회장이던 아서 딕슨을 설계자로 지명하고 몇 가지 주문을 했다. 
교회 건축의 모범이 되게 할 것, 한국인에게 용기를 줄 것, 한국 전통 건축과 조화를 이룰 것…. 
딕슨은 일부러 서울을 두 차례 찾았다. 그는 초가와 기와집이 나지막한 서울에 하늘로 뾰족하게 치솟는 고딕 양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 
좀 더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했다. 
종탑엔 한국 기와를 얹었고 실내 기둥엔 단청을 했다.
[만물상] 성공회의 전통 정원
▶트롤로프 주교의 1922년 환갑잔치 사진이 남아 있다. 
한복 바지저고리에 갓 쓴 흰 수염 노인이 그득 차린 잔칫상을 앞에 놓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현지 토착 문화를 존중하고 공존·조화한다는 게 초기 성공회 성직자들의 정신이었다. 
강화읍에 있는 성공회 성당은 팔작지붕 얹은 한옥 기와집이다. 
1900년 트롤로프 주교가 사제로 있을 때 지은 모습 그대로다.

▶세종대로와 성공회 성당을 가로막았던 국세청 별관 건물이 철거되면서 
그동안 가려 있던 성공회 성당이 멋진 얼굴을 드러냈다. 
짙은 녹음에 어우러진 붉은 벽돌과 지붕이 아름답다. 
성당 뒤쪽에서 오랜 세월 견딘 한옥들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서울시는 엊그제 빈터 활용 방안을 놓고 공모(公募)에 들어갔다. 
이 터의 지상과 지하 공간을 포함해 덕수궁~시청~서울광장~세종대로 지하를 잇는 마스터플랜을 구하는 중이다.

▶국세청 별관 철거로 시민 품에 돌아온 것은 단지 몇 평의 땅이 아니다. 
성공회 성당을 포함한 풍경 전체와 그 안에 깃든 역사도 돌아왔다. 기왕이면 이곳에 우리 전통 정원을 만들면 어떨까. 
성공회 수녀원이 작년부터 점심시간에나마 안마당을 공개하는 것은 
바쁜 도시인에게 정원이 주는 고즈넉함과 위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다. 
전통 정원 조성은 토착 문화와의 조화에서 길을 찾았던 성공회 성당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 가림막 제거(조선일보 2015.08.19)


                                              성공회 성가수녀원 전통정원,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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