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11.19 신수진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
끔찍한 테러가 있었던 지난 13일 금요일 밤 나는 파리 시내에 있었다.
짧은 출장에 이틀 동안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난 뒤라서 초저녁부터 파김치가 돼 있었다.
그래도 '금요일 저녁 파리의 밤을 즐겨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날 밤 비행기로 돌아와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떠올리며 그냥 호텔 방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선 수면유도제를 한 알 먹고 전화기를 끄고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눈을 뜨다가 텔레비전 뉴스에서 쏟아지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길에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음 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길에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됐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업무 때문에 만난 프랑스 예술계 사람들로부터 문자와 전화가 쇄도했다.
그들은 평소 일 외의 사적인 얘기는 거의 한 적 없는 사이인데도 나의 안위를 걱정했고 놀란 마음을 위로했다.
어느 지역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며 현지 뉴스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공항까지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제안해 주는
어느 지역은 위험하니 가지 말라며 현지 뉴스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공항까지 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제안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파리 시내엔 무장한 군인들이 주요 건물에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하고,
미술관은 관람객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있는 마당에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그들의 배려는 깊은 애도와 연민이 절로 내 가슴 속에 가득 차게 만들었다.
서울로 돌아와 파리의 한 희생자 가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았다.
'분노와 증오를 당신들에게 돌려주는 건 죽은 희생자들을 당신과 똑같이 무지한 존재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내 나라의 사람들을 불신하게 하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도록 내가 겁먹기를 바라지만, 당신들은 실패했다.'
어린 아들을 둔 남편이 아내를 잃고도 분노하지 않겠다며 적어 내려간 비장한 말은 그들이 얼마나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지를 실감하게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지 단 이틀 만에 덤덤해지려던 마음이 다시 출렁거린다.
위기와 혼란 속에서도 증오 대신 배려를 나누고 자유를 말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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