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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북스토리]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코덱스'

바람아님 2015. 11. 27. 09:19

(출처-조선일보 2015.08.23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김대식의 북스토리]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코덱스'세상에는 참 읽기 어려운 책들이 많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과 A.N. 화이트헤드의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
(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는 기초 집합론을 시작으로 순수 수학을 정의한 최고 난이도의 
책이다. 특히 362쪽에 가서야 드디어 '1+1=2'라는 사실을 증명해 독자들을 난감하게 하기도 한다.

읽기 어렵기는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영문권 최고의 걸작이자 가장 어려운 책 중 하나로 알려진 '율리시즈'를 완성한 조이스는 
새로운 책을 시작한다. 
율리시즈의 주제가 행동과, 계획과, 후회와, 희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긴 하루였다면, 
'피네간의 경야'는 우리의 밤을 소개한다. 
비이성과 비합리로 가득한 인간의 밤. 그만큼 책은 이해불가능한 문장과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프린키피아'와 '피네건'보다 더 읽기 어려운 책이 한 권 존재한다. 
바로 이탈리아 디자이너 루이지 세라피니(Luigi Serafini)의 '코덱스 세라피니아누스'다. 
에토레 소사스, 알레산드로 멘디니, 안드레아 브란치 같은 디자인 거장들이 활동하던 밀라노 출신의 세라피니는 
그 어느 디자이너보다 더 큰 꿈을 꾼다. 바로 자신만의 세상을 디자인 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말 '아르 누보'(Art Nouveau), 20세기 초 '바우하우스'(Bauhaus), 그리고 20세기 후반 '멤피스'(Memphis)파 
디자이너들 모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본질적 한계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자연의 법칙과 문명은 창의성의 한계가 되기에, 진정으로 새로운 것은 불가능하다.

[김대식의 북스토리]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코덱스'세라피니의 해결책은 과감하다. 
'코덱스'를 통해 그는 새로운 자연의 법칙,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새로운 생명의 기원, 
도시, 인간, 동물, 식물, 사랑, 전쟁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글을 통해 설명된다. 
저자 외에는 그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 하지만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에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백과사전. 
바로 루이지 세라피니의 '코덱스'다. 



Luigi Serafini  “Codex Seraphinianus” Rizzoli







[김대식의 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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