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동서남북] 리디아 고에게서 본 골프 韓流의 미래

바람아님 2015. 11. 29. 08:00

(출처-조선일보 2015.11.28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사진"리디아 고 대단하던데요." 
이틀 전 평소 골프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가 뉴질랜드 교포인 '골프 천재' 리디아 고 
얘기를 꺼내기에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느꼈는지 오히려 호기심이 생겼다.

영국에서 유학했던 그 친구는 "나이도 어린 운동선수가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라고 놀라워했다.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배려하면서 글로 옮겨도 제대로 문장이 되는 말솜씨에 
반했다"고 했다. 하긴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도 인정한 인터뷰 솜씨다.

오래전부터 LPGA 투어를 휩쓸다시피 하는 우리 선수들이 인터뷰할 때면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곤 한다. 
한국말로 해서 통역을 거치든, 아니면 서툰 영어로 용기를 내서 하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자리에 우리 선수들이 익숙지 않아서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쉬울 때가 더 많다. 
한국 선수 중 인터뷰에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박인비도 미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 나라들에서 운동선수라고 수업에 빠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리디아 고에게 말 잘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발표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많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리디아 고는 어린 시절 1주일 35시간 정도 골프 연습을 했다고 한다. 
뉴질랜드 아이들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하루 일과를 모두 골프에 쏟아붓다시피 하는 한국 주니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1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 가서 인사만 하고 돌아오는 주니어 골퍼가 적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정교한 골프 실력에 느긋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리디아 고의 모습은 뉴질랜드 스타일과 한국 스타일이 갖는 장점이 
조화를 이룬 덕분일 것이다.

가끔 리디아 고가 고보경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골프를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골프는 잘했을 것 같지만 지금 그의 장점으로 꼽히는 나머지 부분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 반대 상상도 해본다. 
훈련 시간은 이미 차고 넘치는 우리 선수들에게 박인비나 리디아 고처럼 중·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골프 실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박인비와 리디아 고가 보여줬다. 
가능하다면 영어와 운동 생리학, 책 읽기, 세계 지리, 발표력 함양 등 주니어 골퍼들이 관심 있어 하는 내용으로 
하루 6~8시간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공부 안 하는 운동선수'에 고민하는 스포츠 단체라면 연구할 만한 과제다.

지난달 국내에서 열린 미 LPGA 투어 대회에서 외국 선수들과 경기해본 한 선수는 "즐기면서 골프를 한다는 게 뭔지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나이 차에 관계없이 격의 없이 어울리고, 실수하는 순간에는 화를 내지만 곧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숨 돌릴  틈 없이 경쟁을 벌이며 골프만 쳐온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다음 시즌부터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가 외국 선수들에게 본격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중국, 베트남 등 외국에서 더 많은 대회를 연다. 그만큼 '골프 한류(韓流)'는 세계적으로 인기 상품이 됐다. 
하지만 '빈틈없는 샷'과 '예쁜 맵시'로만 세계 골프의 본보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