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1.30
그러나 파리 테러 이후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이슬람 증오 범죄가 6~8배로 폭증하면서 ‘톨레랑스(관용)’ 프랑스의 이미지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슬람 사원과 무슬림을 향한 무차별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반이슬람 정서의 국내 정치적 악용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특정 이슬람 사원에 대해 감시”는 물론 “테러 용의자에게 물고문을 가하고 붙잡힌 IS 대원을 참수”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낸 이후 그의 인기가 급등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경직된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전체 무슬림의 10%, 어림잡아 1억6000만 명 정도다. 그러나 원리주의자들 모두가 과격한 것은 아니다.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이슬람국가들은 원리주의를 표방하지만 다분히 보수적이다.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반면 IS·알카에다·보코하람 등 급진적 원리주의 세력은 세속주의 정부는 물론 제도권 이슬람 국가들의 정통성마저 부정하며 과격한 방식으로 이들을 무너뜨려 새로운 이슬람 공동체 건설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 공감하는 이들은 전체 원리주의 세력의 10%, 1600만 정도로 보면 무방할 것이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샤히드(Shahid·순교자)도 이들 중 일부다.
전체 무슬림 인구의 1%도 안 되는 급진적 원리주의자들 때문에 나머지 99%의 온건 무슬림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부분을 보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환원주의적 오류다. 광신적 과격파 때문에 이슬람 세계 전체를 배척하고 적대시하면 이들 모두가 서구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이는 곧 ‘문명의 충돌’로 가는 첩경이다. IS나 알카에다가 원하는 것이 바로 ‘다룰 이슬람(Darul Islam, 평화의 세계)’과 ‘다룰 하르브(Darul Harb, 전쟁의 세계)’ 간의 대결구도이기 때문이다. 그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한 군사행동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다. IS와 알카에다를 물리적으로 섬멸한다고 해서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리적 보복을 가할수록 이들에 대한 동조 세력은 더 늘어난다. 샤히드를 제거하면 또 다른 샤히드가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나는 게 이슬람 세계의 내재적 동학이다. 극단주의 확산의 구조적 원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슬람권에 만연해 있는 정치적 압제와 경제적 불평등, 종족 및 종파적 차별과 소외, 청년실업 등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이슬람 테러를 근절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접근법이다.
여기에는 이슬람권의 각성이 필수적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이슬람권 국가, 지도층, 지식인들에게 있다. 스스로 반성하고 개혁해 포용의 자세로 원리주의 급진세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때라야 반전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해 희생양에 불과한 미국과 유럽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방관적 자세로 일관한다면 이슬람 테러는 계속 독버섯처럼 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이슬람권 스스로가 파국을 향해 달리는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려 놓아야 할 때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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