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플러스] 입력 2015.11.29
닥치고 심플 5 - 사진은 칼을 맞아야 산다
사진은 칼을 맞아야 산다.
아니, 무배추도 아닌데 사진에 칼질이라니…. 다른 말이 아니다. 모든 사진은 편집과정을 거쳐 거듭난다는 뜻이다. 중앙일보에서 아트디렉터로 계시던 정병규 선생의 말이다.
이제 사진은 손바닥 안의 친구다. 스마트폰 덕이다. 뉴스에도 SNS에도 온갖 이미지가 넘쳐난다.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시각이미지의 주목도는 텍스트 이미지를 압도한다. 신문이건 인터넷이건 모바일이건 마찬가지다.?아무리 훌륭해도?텍스트만으로는 주목도가 떨어진다. 관련 이미지를 덧붙이면 내가 쓴 기사, 내가 쓴 글이 힘을 얻는다. 감각적인 글의 상당 부분은 이미지에서 나온다. 그런데 같은 이미지라도 이를 다루는 방법에 따라 효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친구들 SNS 사진을 유심히 보자. 대부분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그대로 쓴다. 칼질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칼질이 부담스러워 그럴 수도 있다. 겁낼 일 하나 없다. 디지털시대 아닌가. 자기 취향에 따라 원본 사진은 얼마든지 자르고 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연복 셰프 사진이다. 권혁재 기자가 찍었다.
왜 칼질을 하는가.
누구도 그냥 무배추를 썰지는 않는다. 만들 음식을 생각하며 통으로 썰고 막대로 썰고, 나박 반달 십자로도 썰고, 채썰기 어슷썰기도 택한다. 깎둑 썬 무를 잘게 다지기도 한다. 사진 속 주인공의 분위기에 초점을 맟줄 것이냐 표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 표정이면 눈이냐 입이냐, 아니면 손이냐에 따라 칼질의 방향은 달라진다.
쓰임새에 달렸다는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YS 영결식 때 중앙일보 1면이다.
큰 사건이 있을 때는 언론사들이 사진을 공유한다. 적은 인력으로 넓은 취재영역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날리는 눈발이 영결식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독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YS직계 가족과 MB 내외, 권양숙 여사, 그 뒤에 앉은 VIP들일 것이다. 뒤에 늘어선 카메라 기자와 사진기자들은 이 사진의 중심이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은 과감하게 칼질했다. 국회의장도 대법원장도 잘라냈다.
같은 날자 다른 신문들은 다음과 같은 사진을 실었다.
다음 사진을 보자.
서울시민들의 어물전 노릇을 하던 노량진 시장이 이사 간다. 바로 옆에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로 간다. 언제 가보랴 싶어 놀러갔다가 늦은 밤에 찍었다. ‘사라지는 것들을 추억함’이란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렸다. 첫 번째 사진이 원본이다. 사진의 아래 위를 조금 잘라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로 사선으로 흐르는 철제빔이 정확하게 사진을 양분한다.
사진은 장난감이다. 재미있게 가지고 놀면 그만이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가지고 놀 때 이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안충기 중앙일보 섹션&디자인부장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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