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한겨울 황금꽃밭? 성산읍 바닷가서 귤껍질 말리는 풍경

바람아님 2015. 12. 6. 01:13

제주스케치-겨울

산과 들, 바다를 넘나들며 제주의 풍경과 풍습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사진에 담아낸 '조의환의 제주스케치'.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생경한 '겨울'의 모습을 함께 감상해보세요.

  • 조의환 ·사진가
  •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조선일보 : 2015.12.04 

산과 들, 바다를 넘나들며 제주의 풍경과 풍습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사진에 담아낸 '조의환의 제주스케치'.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생경한 '겨울'의 모습을 함께 감상해보세요.


한겨울 황금꽃밭? 성산읍 바닷가서 귤껍질 말리는 풍경



아무리 따뜻한 제주라지만 한겨울에 들판 가득 황금색 꽃이라니, 도대체 이게 뭘까? 겨울철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바닷가에 자리한 신천목장(남해상사) 5만 여평 초지에는 지천으로 널린 귤껍질이 은은한 귤향과 함께 광활한 황금꽃밭의 장관을 연출한다. 제주도내 감귤주스 공장 세 곳에서 주스를 연 15만t 만들고 난 부산물인 껍질과 찌꺼기 6만여t을 모두 가져다 찌꺼기는 미생물 발효를 거쳐 가축 사료로 쓰고 껍질은 초지에 건조망을 깔고 널어 말린다. 해풍과 겨울 빛에 2~3일 자연 건조를 한 다음 열풍 건조를 거쳐 상품은 식품 원료나 한약재, 향료 첨가물로 판매하고 하품은 가축 사료가 된다니 버릴 게 하나도 없다. 12월부터 2월 사이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입이 딱 벌어지는 이색 풍경을 만날 수 있다. 2015년 1월 3일 촬영했다.



겨울바람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고 눕듯 버티는… 바람의 나무 '폭낭'


삼다도(三多島)를 실감케 하는 것 가운데 으뜸이 제주의 겨울바람이다. 풍랑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바람이 거센 날이면 장정도 걸음을 옮기기 힘들다. 바람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고 눕듯 버티는 바람의 나무 '폭낭'은 사철 멋이 있지만 나목(裸木)이 된 겨울 모습이 매력적이다. 육지 마을 느티나무처럼 제주는 '폭낭' 또는 '퐁낭'으로 불리는 팽나무가 정자 나무이자 당산나무(堂山木)다. 겨울바람에 잎이 날아가면, 한쪽으로 드라이를 해서 넘긴 머리카락처럼 누운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버텨낸 적응력이 놀랍다. 척박한 땅을 움켜쥐고 버티고 있을 뿌리를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진다. 사진은 겨울바람이 드세기로 유명한 한경면 판포리의 폭낭.



매표소도 시간제한도 없다… 한라산의 선물, 천연 눈썰매장


눈이 내린 다음 날이면 어린이가 있는 제주도 가족들은 눈썰매를 챙겨 너도나도 한라산 천연 눈썰매장을 찾는다. 어묵꼬치와 떡볶이, 쥐치포 등 주전부리와 대여 눈썰매까지, 고객 맞을 준비를 끝낸 이동포차가 서둘러 자리를 잡는다. 이런 날이면 516번 도로 제주마 방목지와 1117번 산록 도로 어승생악 삼거리 부근 축우방목지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주차 행렬이 진풍경을 이룬다. 이 두 곳이 제주도의 대표 눈썰매장이다. 매표소도 시간 제한도 없는 공짜. 인공눈이 아닌 깨끗한 천연 눈밭을 맘껏 달리고 뒹굴 수 있으니 축복이다. 겨울 제주 여행에서 눈을 만나면 비료 포대 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번 도전해 보길 권한다. 사진은 한라산에 대설 경보가 발령된 2014년 12월 21일 어승생악 삼거리 부근 눈썰매장.



제주의 눈은 얌전히 내리는 법이 없다… 그래도 상록수는 버티고 서 있다


제주의 눈은 얌전히 소록소록 내리는 법이 없다. 내린다기보다 몰아친다, 때린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땅바닥에는 눈이 쌓이지만 돌담이나 나뭇가지는 바람이 치는 쪽에 눈이 달라붙는다. 한라산 고지대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저지대는 쌓였던 눈도 해가 나기만 하면 그야말로 눈 녹듯 사라진다. 그러니 추위나 눈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없고 상록수들도 멀쩡히 잘 자란다. 눈이 녹기 전인 오전 일찍 체인을 감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일주도로 주변을 따라 부지런히 길을 나서면 검은 현무암과 흰 눈의 대비가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난다. 한라산 설경도 좋지만 녹아 사라지는 눈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들판과 해안의 겨울 풍경도 매력 있다.

사진은 2015년 1월 1일 오전 폭설이 몰아치는 한경면 저지리 도로변에 매서운 눈보라를 버티고 서 있는 상록 활엽수 녹나무 가로수.



한라산 엄동설한 버텨낸 마른 가지들… 아, 매화야! 드디어 네가 왔구나


한라산 잔설 녹아내리니 매화는 눈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옛 선비들은 봄을 알리는 꽃 매화(梅花)를 예찬하여 많은 시와 그림을 남겼다. 추운 겨울을 버텨낸 마른 가지에서 잎이 돋기도 전에 꽃을 피우니, 오랜 기다림 끝에 봄을 맞이하는 설렘이 무언가를 남기도록 한 모양이다.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등장했던 축시가 떠올랐다. 중국 송나라 때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였던 왕안석(王安石)의 시 '매화'에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잘 드러났다.

墻角數枝梅(장각수지매) 울타리 모퉁이를 지키고 선 매화나무/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추위 아랑곳하지 않고 꽃망울 터뜨렸네/遙知不是雪(요지불시설) 눈꽃 아님을 멀리서도 알 수 있음은/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은은한 향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로다.

사진은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1000여 그루 매화가 장관인 '노리매' 공원에서 2015년 2월 3일 촬영했다. 청매가 막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겨울 동백꽃이 수놓은 비단 이부자리… 新房처럼 곱구나이미지 크게보기


겨울꽃 동백(冬柏)은 짙은 녹색의 풍성한 잎 속에서 새빨간 꽃을 피운다. 완벽한 보색대비(補色對比)다. 늘 푸른 활엽수가 흔한 제주도지만 겨울에 꽃을 피우는 모습이 애절하기도 하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1964년 이미자가 불러 국민가요가 된 '동백 아가씨'의 가사다. 모진 겨울 추위 속에 꽃을 피웠다. 아가씨의 빨간 볼 같다. 


동백꽃 지는 모습이 특이한데 다른 꽃처럼 시들시들 마르고 갈색으로 변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꽃송이가 그냥 툭 떨어진다. 꽃이 떨어진 나무 아래는 마치 선홍색 비단 이부자리를 깔아 놓은 신방(新房)처럼 곱다. 동백기름 발라 가지런히 빗어 쪽 찐 여인네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듯해 부끄럽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 인근 해안엔 수령 100년을 넘긴 튼실한 동백 숲이 있다. 이 밖에 여러 곳에서 동백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현대미술관 뜰에 떨어진 동백꽃잎 위에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



▶조의환은

197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신문·잡지·출판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조선일보 가로짜기 리디자인과 전용서체 개발과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형 전시의 기획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뉴욕타임즈, 가디언, 조선일보의 편집디자인〉(미디어연구소 2004년), 〈FLUX〉(사진예술 2011년)이 있다. 현재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사진작업과 전시, 출판기획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