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13일의 금요일’에 만난 배우 서현철과 남성진

바람아님 2015. 12. 8. 00:45

[중앙일보] 입력 2015.12.07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배우 서현철과 남성진의 인터뷰 시간이 11시 30분이었다.
점심시간을 고려하면 애매한 시간이었다.

인터뷰 장소인 대학로로 출발하려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비가 와서 인터뷰 장소를 바꾸었다는 통보였다.

가는 도중 라디오에서 비 오는 ‘13일의 금요일’이라는 멘트가 나왔다.
무심코 흘려들었다.

약속장소인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연극 홍보를 담당하는 직원이 인사를 건네며 먼저 사진 걱정을 했다.
“비가 와서 장소를 야외에서 실내로 바꿨어요. 급히 바꾸다 보니 여기 여건이 그리 좋지 않네요. 사진 찍기 마땅치 않으실 것 같은데 어쩌나요?”

레스토랑의 맨 구석자리였다.
슬쩍 둘러보니 이미 외국인 여성 둘과 한국 여성 셋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만 상황을 바꿀 별다른 도리도 없었다.

“상황이 안 좋은 건 배우들이 더 잘 알 겁니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배우들이 더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표현해줄 터이니 걱정마세요.”

겉으로 태연한 척하는 건 습관이다. 애면글면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때부터 상황이 꼬여만 간다.

레스토랑 직원이 차를 가져왔다.
두 배우의 식사도 함께였다.

남성진씨가 죄송하다며 이야기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먹으면서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

취재기자가 답했다.
“시간이 없으신가 보네요. 그럼 번갈아 드시면서 진행하시죠.”

협소한 장소에 빠듯한 시간이란 변수가 덧붙여졌다.

인터뷰의 주제는 웃음이었다.
두 배우는 연극 ‘웃음의 대학’의 검열관 역을 번갈아 연기하고 있었다.
코미디 연극이니 활짝 웃는 표정 한 컷이면 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때마침 서현철씨가 고민에 빠져들 이야기를 했다.
“코미디라고 해서 억지로 웃기는 게 아닙니다. 삶이 묻어나도록 진솔하게 연기하면서 웃음과 감동을 전달해야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관객의 공감’이란 말이 머리를 때렸다.
사진 또한 연극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웃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웃게끔 하는 사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에 빠졌다.

어느덧 열두 시,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꽉 찼다.
변수를 생각해서 미리 점찍어 둔 장소와 배경들은 이젠 무용지물이다.
가득 찬 실내, 시장처럼 웅성거린다.

게다가 빗소리마저 거세졌다.
위를 올려다봤다.
천정이 천막이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빗소리의 혼합, 정신 사나울 정도였다.
그래도 엄청난 소음을 뚫고 전해져 오는 중저음의 목소리, 선명했다.
연극배우의 내공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두 배우의 사진을 몇 컷 찍고 갔다.
그 바람에 두 배우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이 알아챘다.
모든 시선이 우리가 앉은 쪽을 향했다.

이젠 협소한 장소, 빠듯한 시간, 큰 소음에 뭇 사람들의 시선이란 변수가 덧붙여졌다.
오면서 무심코 흘려들었던 ‘13일의 금요일’이 떠올랐다.
인터뷰는 막바지인데 어떻게 찍을지 정하지도 못했다.
뭔가 옥죄어 오는 느낌이었다.

취재기자가 마지막으로 남성진씨에게 연극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항상 취재기자의 ‘마지막 질문’이란 말은 달가운 편이다.
이제야 나의 시간이 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어떻게 찍어야 할지 막막할 땐 청천벽력으로 들린다.
딱 그런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연기를 해야 하는 연극, 호흡과 내면 연기를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됩니다. 속된말로 내공이 레벨 업 되는 거죠. 마약 같은 끊기 힘든 맛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어떤 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연기를 하는 그들.
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배우가 아닌가.
이들에게 메시지만 던지면 나머지는 알아서 표현해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걱정을 했다.
그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아는 거다.

“어디서 어떻게 찍을까요?”
“보시다시피 달리 옮길 공간도 없고 그냥 앉은 자리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냥 활짝 웃으면 될까요?”
“아뇨!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듯 배우가 웃는 게 아니라 배우를 보는 관객이 웃게끔 하는 사진이 메시지가 아닐까요?”

두 배우가 서로 마주보며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마침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고 하네요. 몸통 없이 얼굴 표정만으로 블랙코미디 같은 메시지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둘 다 좋다고 했다.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테이블 위에 얼굴을 올리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내 몫이었다.
그 다음은 그들의 몫이었다.

빠듯한 시간,
웅성거리는 사람들,
뭇사람들의 시선,
쭈그리고 앉은 묘한 자세,
허나 테이블 위에 오른 그들의 얼굴은 이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우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