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혼자 술 마시기

바람아님 2015. 12. 29. 07:38

(출처-조선일보 2015.12.29 김민철 논설위원)

1970년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9년 2개월 재직한 김정렴 전 실장은 술을 좋아했지만 재직 시절 술자리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무엇보다 잡음이 나오는 것을 우려했다. 술자리에서 중요한 기밀을 누설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신 그는 집에서 혼자 식사하면서 맥주를 반주로 마시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요즘 말로 치면 '혼밥'에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즐긴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을 혼자 먹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넘어 혼자 술을 마시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광고 회사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최근 1년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혼자 술 마시기에 '아쉽다·무섭다·심심하다' 

같은 부정적 단어보다 '즐겁다·행복하다·재미있다·편안하다' 등 긍정적 단어 비중이 높았다고 밝혔다. 

'혼술'을 즐기는 사람을 외톨이가 아니라 낭만을 아는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도 널리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술 하면 젊은 시절의 실연(失戀) 정도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낭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최근 혼자 마시기 좋은 술집도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혼자 술 마시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블로그나 기사가 적지 않다. 

혼술족이 늘어난 것은 나홀로족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가를 혼자 보내는 사람이 2007년 44.1%에서 지난해 56.8%로 늘어났다.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 15.6%에서 2012년 25.3%로 증가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때로는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 저녁에 집에서 맥주나 와인 한잔하는 정도지만, 

주변에 혼자 마시기 좋은 술집이 있다면 생각날 때 가보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혼술의 장점은 마시고 싶은 시간에 마시고 싶은 양만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 동료, 친구에게 끌려다니며 과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사들은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알코올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가 많다. 

그것을 조건반사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알코올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홀로 술을 마시려면 양과 시간을 미리 정해놓고, 물과 안주와 함께 천천히, 

기분 좋을 정도까지만 마시는 것이 좋다고권했다. 

혼술은 자신과 벗하며 마시는 자기 위로다. 

제동이 풀릴 수 있다는 위험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