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1.01
그러나 스스로 물어보자. “우리는 이런 기회를 활용할 준비가 돼 있는가?” 답은 “아니오”다.
우리 외교는 아직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이해의 충돌 없이 우리의 평화와 통일을 지지할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배울 교훈은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의 지지부터 확보해 놓고 동독과 통일 협상을 벌인 것이다. 통일총리 헬무트 콜은 통일 과정에서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이 동시에 진행될 필요성을 애창곡의 후렴처럼 반복했다.
정치권의 무관심은 더 절망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10년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야당의 어느 한 사람도 북한과 평화와 통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 여당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5월 통탄할 일이 국회에서 벌어졌다. 러시아 하원의장 세르게이 나리시킨이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참석한 의원은 정의화 국회의장, 한·러의원친선협회장 김한길 의원, 러시아에서 유학한 우윤근 의원 등 달랑 다섯 명. 북·중 관계가 소원한 틈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러시아의 중요성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무지가 이 정도면 한숨도 사치다. 통일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러시아의 역할도 빅4의 4분의 1이라는 걸 저 무지한 국회의원들은 모른다.
정부는 어떤가. ‘원칙’에 발목이 잡혀 남북한 고위급회담을 진전시키지 못한다. 통 크게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 놓고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포함한 긴장 완화에 필요한 요구를 하면 될 일이다. 보수층의 지지를 업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익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위안부 문제에서 그로선 최대한의 양보를 한 것은 지지 기반인 보수층을 설득할 각오가 있어서였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전반적인 무관심도 정부의 나태와 형식주의를 조장하는 요인이다. 학생들을 상대로 평화가 왜 필요한지, 통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일은 통일된 독일을 경계하는 주변 국가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에 관한 초보적인 교육도 시행되지 않는다. 안보 교육뿐이다. 안보는 적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자라나는 세대의 안보불감증 해소가 중요하지만 평화와 통일의 균형 위에서 가르쳐야 한다. 안보만 강조하면 평화와 통일은 멀어진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1989년 동독이 시민혁명으로 벼랑 끝에 섰을 때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게 개혁을 촉구하면서 “늦게 오는 자는 인생의 벌을 받는다”고 했다. 이 말은 북한과 한국에도 적실성이 있다.
빅4가 경쟁하는 기회, 김정은이 개혁 의지를 갖고 남한에 대화의 손을 내민 기회를 놓치면 “인생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생의 벌은 역사의 심판이다. 오토 비스마르크도 말했다. 역사를 바꾸는 신이 문 앞을 지날 때 뛰쳐나가 그 옷자락을 붙잡는 것이 참정치가의 임무라고.
정부는 실용주의적 자세로 북한과의 실질적인 관계를 개선하고, 시민사회는 평화와 통일 교육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중앙일보가 2016년 평화오딧세이에 나서는 이유다. 중앙일보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참여하고, 학생·시민들에게 평화와 통일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데 가능한 노력과 자원을 집중할 각오로 새해를 맞는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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