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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아버지

바람아님 2016. 1. 27. 00:38
국민일보 2016-1-26

아버지들의 희로애락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 찬사를 받았다는 칸영화제 화제작 ‘아버지의 초상’ 시사회에 다녀왔다. 회사의 부당한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고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하지만 업무에서 오는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히면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사회 현실과 비인간적인 시장 구조에서 생존하려는 아버지로서 주인공의 모습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사회의 가장의 모습이었다.

영화를 통해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족의 중심이자 가장으로서 가족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든든한 버팀목과 울타리가 되고 그늘이 되어주는 아버지. 막중함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대다수의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삶의 고달픈 짐을 짊어진 채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가족 때문에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하고 냉혹한 현실도 버텨가며 고군분투한다. 남자는 자유로울 수 있지만 가장은 그렇지 못한 것은 가족이라는 버거운 숙제를 안고 인고의 세월을 지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강하고 꿋꿋하게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눈물을 가슴에 품고 사는 고독한 존재가 가장은 아닐는지.


한 몸 부서지도록 일만 하는 아버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는 무엇보다 자식일 것이다. 부성애.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웃음과 울음은 어머니의 그것과는 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아버지의 깊은 외로움이 치유되고 노고가 보상 받게 되는 것은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식들이 올곧게 잘 성장해 주는 것이리라.


곰곰 생각해보면 나의 아버지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배제된 채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가장이라는 이름으로만 사신 것 같다. 태산 같이, 거목 같이 크고 완벽한 존재로 보였던 아버지도 때로는 가벼운 바람결에도 쓰러질 수 있는 갈대이고 외롭고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가족의 삶을 일궈내느라 땀과 눈물로 수고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 받아 마땅하다.


김세원(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