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1.12 02:43
지난 6일 세계 1위 드론 업체인 DJI가 중국 선전에 문을 연 세계 첫 드론 플래그십스토어(대형 단독매장). 지난해 12월 연 800㎡ 규모의 매장에서 사람들은 옷을 고르듯 드론을 쇼핑하고 있었다. 한 대에 4000달러가 넘는 고가 모델까지 보였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기·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6’의 드론 전시관. 미국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까지 중국 DJI의 부스로 몰렸다.
‘드론 전쟁(Drone War)’이다. 연평균 35%씩 성장 중인 민간용 무인항공기(드론) 시장을 두고 중국·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다. 민간용 드론 시장은 중국이 독식하고 있다. DJI의 점유율만 70%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재난 구조나 산불 감시 등에 쓰는 산업용 드론을 판매하는데 규모가 100억원에 불과하다. 전 세계 시장(12억 달러)의 0.5% 수준이다. CES 드론 전시관의 30여 개 업체 중에서도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바이로봇)뿐이었다.
한국의 기술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무인항공기가 애초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던 만큼 분단 국가인 한국도 무인항공기 기술에 공을 들여 왔다. 한국의 무인기 특허는 세계 5위, 군용 기술로는 세계 7위급이다.
김인화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장(상무)은 “민간 전시회에서 보는 드론보다 훨씬 우수한 무인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을 이유로 군사용 기술이 민간에 보급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또 센서·통신장비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더디다. 운용 소프트웨어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한다.
과도한 규제 장벽은 국산 드론의 성장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당장 서울에서 드론 한 대를 띄우려면 국군기무사령부·국토교통부(서울지방항공청)·국방부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미용 드론도 함부로 날릴 수 없다.
▶관련 기사 선전 하늘은 드론 놀이터, 3만원이면 사서 띄운다
반면 중국은 규제가 거의 없다. 6일 선전시내 곳곳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는 젊은이와 마주쳤다. DJI 비행전문팀의 엘라 장은 “사전 허가 없이 어디서든 드론을 띄울 수 있다”며 “공항 반경 5㎞ 이내, 군사용이나 정부 시설 정도가 비행 제한구역”이라고 했다. 아이디어가 실제 시제품으로 연결되기까지 기간도 6주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이 주춤한 동안 중국 DJI는 ‘드론 세계 1위’를 넘어 ‘드론 생태계 조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의료·농업·재난구조·가상현실 등의 분야에서 업계 1위 기업의 제품을 자사의 드론에 얹겠다는 전략이다. 케빈 온(36) DJI 상무는 “페이스북이나 구글·애플처럼 DJI식 드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무인기 개발 10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승환(드론프레스 대표)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는 “드론 산업은 단순 제조(1차)에서 열상카메라 등 관련 장비의 장착(2차), 교육·서비스·파이낸스 등 연관 서비스(3차)로 진화한다”며 “아직까지 한국은 1차 산업 육성책을 논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선전=곽재민 기자, 라스베이거스=이현택 기자
jmkwak@joongang.co.kr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DJI 세계 1위 업체된 비결
‘윙윙~’ ‘윙윙-’. 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지난 6일 오후 중국 선전(深?) 시내는 드론의 놀이터였다. 거리에서도 공원에서도 ‘윙윙’ 소리를 내는 드론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행인들은 도심 곳곳을 곡예 비행하는 형형색색의 드론 움직임을 눈으로 쫓느라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세계 드론 1위’인 DJI 본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샤오미·알리바바도 못 이룬 ‘세계 1위의 꿈’을 실현한 최초의 중국 기업 DJI는 선전 시민들의 자부심이었다. DJI 본사 건물은 거대한 연구개발(R&D) 센터를 방불케 했다. 사옥 대부분이 기술 보안을 위한 통제구역이었다. DJI의 한국지역 담당인 문태현 매니저는 “본사 근무자 1500여 명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이 약 70%”라고 했다. 본사 21층 사장실 문 앞에는 중국어로 ‘두뇌만 출입 가능, 감정은 뺄 것’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창업자인 왕타오(36) 사장의 ‘기술 제일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DJI는 드론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플라이트 컨트롤러(Flight Controller·FC)’와 기체 움직임에 관계없이 카메라를 일정한 기울기로 유지시켜 주는 기구인 ‘짐벌’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왕 사장은 홍콩과학기술대(HKUS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중 조별 과제로 ‘헬기 제어 시스템’을 연구하다 2006년 DJI를 창업했다. 동업자 대부분이 회사를 떠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DJI 기술을 집약해 만든 보급형 드론 ‘팬텀’으로 창업 7년 만에 성공 가도에 올랐다. 2014년에만 전 세계에서 40만 대가 팔리면서 드론 열풍을 이끈 제품이다.
이에 힘입어 2011년 420만 달러(약 50억원)였던 DJI의 매출은 2014년 5억 달러(약 6046억원)로 120배가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1년 90명이었던 직원 수도 지금은 4000명을 넘는다. 투자도 쏟아진다. 초창기 페이스북 투자사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액셀파트너스’가 지난해 7500만 달러를 DJI에 베팅했다. 시장에선 아직 상장하지 않은 DJI의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약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DJI의 성장 동력인 ‘자체 기술력’을 뒷받침한 것은 본사가 있는 ‘선전 실리콘밸리’다. 선전엔 전자부품 및 장비 제조 공장이 몰려 있다. 선전에선 아이디어가 실제 시제품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기간은 6주. 3~4개월 걸린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절반 수준이다. 최신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만들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부품을 빨리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DJI의 기술력과 더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다.
6일 저녁 선전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가 화창베이(華强北)를 찾았다.
5~10층 높이의 대형 전자제품 판매 빌딩 70여 동이 밀집한 화창베이에선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곧이들릴 정도로 온갖 부품과 전자제품이 넘쳐났다. 그런 화창베이의 거리도 드론이 점령 중이었다. 200위안(약 3만5800원)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드론을 파는 매장들이 늘어섰다. 화창베이의 별칭은 ‘드론의 메카’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드론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선전뿐 아니라 중국 대륙 어디서나 드론을 날릴 수 있다. 정부시설, 군사기지, 공항 인근 지역 정도만 규제한다. 그래서 중국은 드론의 활용도가 높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 등 9개 도시에서 드론을 이용한 상품 배송 시범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또 스모그 제거를 위해 대기 중에 화학물질을 살포하거나 대학입시에서 전파탐지를 통해 금지된 무선장비가 부정행위에 사용되는지 찾아내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중국 드론 시장 규모는 2013년 5000만 달러에서 2022년엔 3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탄한 내수시장이 드론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용 드론 시장을 제패한 DJI의 궁극적 목표는 ‘드론 생태계’ 조성이다. 단순 하드웨어 개발보다는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통한 응용 분야에 공들이고 있다.
DJI는 지난해 말 농약이나 씨앗을 뿌리는 데 사용하는 농업용 드론 공개에 이어 소방관이 화재 진압 전 경로 분석 등이 가능한 열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선보이면서 산업용 드론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 사장은 열상카메라를 장착한 드론 공개 자리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작물의 성장에 대한 전략적 통찰을 얻게 될 것이고 불이 난 곳에선 불길 확산에 대한 효율적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드론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향후 10년 동안 드론을 둘러싸고 흥분되는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미래가 기다려진다.”
선전=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드론계의 ‘애플’DJI는
● 설립자 겸 CEO: 왕타오(36)
● 설립: 2006년
● 매출: 2011년 420만 달러/ 2013년 1억3000만 달러
2014년 5억 달러/ 2015년 10억 달러(추정)
● 연간 상업용 드론 판매량: 40만여 대(2014년 기준)
● 민간 드론 시장 점유율: 70%
자료: Frost & Sullivan
[중앙일보]
입력 2016.01.12 02:37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CES서 만난 DJI 케빈 온 상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6’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드론 전시관이었다. 관람객이 몰린 DJI 부스에서는 열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비행 시연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케빈 온(36·사진) DJI 대외협력담당 상무는 “지금까지는 방송 촬영이나 완구 등으로 사용된 드론의 용도가 앞으로 10년간은 농업·재난구조 등의 기술과 접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는 케빈 온 상무와의 일문일답.
- 왜 드론인가.
“아무도 하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누가 뭘 해도 최초가 되는 곳이다.”
- 드론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농업은 무인기를 써서 효율성을 올리고 시간을 절약하기 쉬운 분야다. 그 외에도 물류, 3D 가상현실, 의료, 재난구조 등이 유망 분야다. DJI는 남아공에 있는 물류 업체와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과 드론을 활용해 창고 관리를 하고 있다. 의약품을 배달하거나 드론을 활용한 360도 가상현실, 비디오 게임도 조만간 개발될 것이다.”
- 한국은 드론 분야에서 후발주자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다. 비행 기술 등을 따라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브랜드 차별화가 아닐까 싶다. DJI도 그동안 없었던 상용 드론 시장을 개척하는 데 꼬박 10년 가까이 걸렸다. 한국 업체들이 드론 분야에서 어떤 브랜드와 가치로 차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 이번 CES에서 중국계 후발 무인기 업체 ‘이항’이 대형 유인 드론을 공개했다.
“재미있다는 표현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하지만 무인기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닌다는 점에 대해선 각국 항공 관련 규제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 드론 외에 휴대용 영상 카메라도 전시했는데.
“경영학 용어로 치면 관련 다각화다. 무인기에 카메라를 달아서 판매하다 보니 떨림 방지 기술력이 생겼다. 이를 활용해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했다. ”
라스베이거스=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6.01.12 02:36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국내 무인기 산업 어디까지 왔나
#2022년 1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다. 서해상을 감시하던 틸트로터 무인항공기 ‘KUS-VT’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북한 경비정의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해군 222전진기지에 신속하게 전송한다. 우리 군함이 출동하자 북한 경비정은 줄행랑을 친다. 틸트로터 무인기는 군함 갑판 위로 헬리콥터처럼 착륙하며 임무를 완수한다."지난 8일 대전에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무인항공기 시뮬레이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1층엔 그 동안 실험을 위해 만든 무인항공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연구원들이 틸트로터 무인항공기 ‘KUS-VT’의 모형을 살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지난 6일 세계 1위 드론 업체인 DJI가 중국 선전에 문을 연 세계 첫 드론 플래그십스토어(대형 단독매장). 지난해 12월 연 800㎡ 규모의 매장에서 사람들은 옷을 고르듯 드론을 쇼핑하고 있었다. 한 대에 4000달러가 넘는 고가 모델까지 보였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기·전자제품 전시회 ‘CES 2016’의 드론 전시관. 미국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까지 중국 DJI의 부스로 몰렸다.
‘드론 전쟁(Drone War)’이다. 연평균 35%씩 성장 중인 민간용 무인항공기(드론) 시장을 두고 중국·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다. 민간용 드론 시장은 중국이 독식하고 있다. DJI의 점유율만 70%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재난 구조나 산불 감시 등에 쓰는 산업용 드론을 판매하는데 규모가 100억원에 불과하다. 전 세계 시장(12억 달러)의 0.5% 수준이다. CES 드론 전시관의 30여 개 업체 중에서도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바이로봇)뿐이었다.
한국의 기술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무인항공기가 애초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던 만큼 분단 국가인 한국도 무인항공기 기술에 공을 들여 왔다. 한국의 무인기 특허는 세계 5위, 군용 기술로는 세계 7위급이다.
김인화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장(상무)은 “민간 전시회에서 보는 드론보다 훨씬 우수한 무인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을 이유로 군사용 기술이 민간에 보급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또 센서·통신장비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더디다. 운용 소프트웨어도 전량 해외에서 수입한다.
과도한 규제 장벽은 국산 드론의 성장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당장 서울에서 드론 한 대를 띄우려면 국군기무사령부·국토교통부(서울지방항공청)·국방부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한다. 취미용 드론도 함부로 날릴 수 없다.
▶관련 기사 선전 하늘은 드론 놀이터, 3만원이면 사서 띄운다
반면 중국은 규제가 거의 없다. 6일 선전시내 곳곳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는 젊은이와 마주쳤다. DJI 비행전문팀의 엘라 장은 “사전 허가 없이 어디서든 드론을 띄울 수 있다”며 “공항 반경 5㎞ 이내, 군사용이나 정부 시설 정도가 비행 제한구역”이라고 했다. 아이디어가 실제 시제품으로 연결되기까지 기간도 6주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이 주춤한 동안 중국 DJI는 ‘드론 세계 1위’를 넘어 ‘드론 생태계 조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의료·농업·재난구조·가상현실 등의 분야에서 업계 1위 기업의 제품을 자사의 드론에 얹겠다는 전략이다. 케빈 온(36) DJI 상무는 “페이스북이나 구글·애플처럼 DJI식 드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무인기 개발 10개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승환(드론프레스 대표)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는 “드론 산업은 단순 제조(1차)에서 열상카메라 등 관련 장비의 장착(2차), 교육·서비스·파이낸스 등 연관 서비스(3차)로 진화한다”며 “아직까지 한국은 1차 산업 육성책을 논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선전=곽재민 기자, 라스베이거스=이현택 기자
jmkwak@joongang.co.kr
선전 하늘은 드론 놀이터, 3만원이면 사서 띄운다
[중앙일보] 입력 2016.01.12 02:38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DJI 세계 1위 업체된 비결
‘윙윙~’ ‘윙윙-’. 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지난 6일 오후 중국 선전(深?) 시내는 드론의 놀이터였다. 거리에서도 공원에서도 ‘윙윙’ 소리를 내는 드론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행인들은 도심 곳곳을 곡예 비행하는 형형색색의 드론 움직임을 눈으로 쫓느라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세계 드론 1위’인 DJI 본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샤오미·알리바바도 못 이룬 ‘세계 1위의 꿈’을 실현한 최초의 중국 기업 DJI는 선전 시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이에 힘입어 2011년 420만 달러(약 50억원)였던 DJI의 매출은 2014년 5억 달러(약 6046억원)로 120배가 넘게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1년 90명이었던 직원 수도 지금은 4000명을 넘는다. 투자도 쏟아진다. 초창기 페이스북 투자사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액셀파트너스’가 지난해 7500만 달러를 DJI에 베팅했다. 시장에선 아직 상장하지 않은 DJI의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약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DJI의 성장 동력인 ‘자체 기술력’을 뒷받침한 것은 본사가 있는 ‘선전 실리콘밸리’다. 선전엔 전자부품 및 장비 제조 공장이 몰려 있다. 선전에선 아이디어가 실제 시제품으로 연결되기까지의 기간은 6주. 3~4개월 걸린다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절반 수준이다. 최신 기술을 적용해 제품을 만들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부품을 빨리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이 DJI의 기술력과 더해지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다.
6일 저녁 선전 실리콘밸리의 중심이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상가 화창베이(華强北)를 찾았다.
5~10층 높이의 대형 전자제품 판매 빌딩 70여 동이 밀집한 화창베이에선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곧이들릴 정도로 온갖 부품과 전자제품이 넘쳐났다. 그런 화창베이의 거리도 드론이 점령 중이었다. 200위안(약 3만5800원)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드론을 파는 매장들이 늘어섰다. 화창베이의 별칭은 ‘드론의 메카’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드론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선전뿐 아니라 중국 대륙 어디서나 드론을 날릴 수 있다. 정부시설, 군사기지, 공항 인근 지역 정도만 규제한다. 그래서 중국은 드론의 활용도가 높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베이징과 상하이·광저우 등 9개 도시에서 드론을 이용한 상품 배송 시범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또 스모그 제거를 위해 대기 중에 화학물질을 살포하거나 대학입시에서 전파탐지를 통해 금지된 무선장비가 부정행위에 사용되는지 찾아내는 용도로도 사용됐다. 중국 드론 시장 규모는 2013년 5000만 달러에서 2022년엔 3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탄한 내수시장이 드론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용 드론 시장을 제패한 DJI의 궁극적 목표는 ‘드론 생태계’ 조성이다. 단순 하드웨어 개발보다는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통한 응용 분야에 공들이고 있다.
DJI는 지난해 말 농약이나 씨앗을 뿌리는 데 사용하는 농업용 드론 공개에 이어 소방관이 화재 진압 전 경로 분석 등이 가능한 열상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선보이면서 산업용 드론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 사장은 열상카메라를 장착한 드론 공개 자리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작물의 성장에 대한 전략적 통찰을 얻게 될 것이고 불이 난 곳에선 불길 확산에 대한 효율적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드론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향후 10년 동안 드론을 둘러싸고 흥분되는 시간이 펼쳐질 것이다. 미래가 기다려진다.”
선전=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드론계의 ‘애플’DJI는
● 설립자 겸 CEO: 왕타오(36)
● 설립: 2006년
● 매출: 2011년 420만 달러/ 2013년 1억3000만 달러
2014년 5억 달러/ 2015년 10억 달러(추정)
● 연간 상업용 드론 판매량: 40만여 대(2014년 기준)
● 민간 드론 시장 점유율: 70%
자료: Frost & Sullivan
“한국, 비행 기술은 따라오겠지만 브랜드 차별화가 관건”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CES서 만난 DJI 케빈 온 상무
이곳에서 만난 케빈 온(36·사진) DJI 대외협력담당 상무는 “지금까지는 방송 촬영이나 완구 등으로 사용된 드론의 용도가 앞으로 10년간은 농업·재난구조 등의 기술과 접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는 케빈 온 상무와의 일문일답.
“아무도 하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누가 뭘 해도 최초가 되는 곳이다.”
- 드론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농업은 무인기를 써서 효율성을 올리고 시간을 절약하기 쉬운 분야다. 그 외에도 물류, 3D 가상현실, 의료, 재난구조 등이 유망 분야다. DJI는 남아공에 있는 물류 업체와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과 드론을 활용해 창고 관리를 하고 있다. 의약품을 배달하거나 드론을 활용한 360도 가상현실, 비디오 게임도 조만간 개발될 것이다.”
- 한국은 드론 분야에서 후발주자다.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다. 비행 기술 등을 따라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브랜드 차별화가 아닐까 싶다. DJI도 그동안 없었던 상용 드론 시장을 개척하는 데 꼬박 10년 가까이 걸렸다. 한국 업체들이 드론 분야에서 어떤 브랜드와 가치로 차별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 이번 CES에서 중국계 후발 무인기 업체 ‘이항’이 대형 유인 드론을 공개했다.
“재미있다는 표현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하지만 무인기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닌다는 점에 대해선 각국 항공 관련 규제 문제가 있어 상용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 드론 외에 휴대용 영상 카메라도 전시했는데.
“경영학 용어로 치면 관련 다각화다. 무인기에 카메라를 달아서 판매하다 보니 떨림 방지 기술력이 생겼다. 이를 활용해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했다. ”
라스베이거스=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한국 ‘틸트로터’ 기술은 미국 다음 … 틈새시장 노려라
한국 신성장 동력 10 <2> 드론 (무인항공기)
국내 무인기 산업 어디까지 왔나
#2022년 1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다. 서해상을 감시하던 틸트로터 무인항공기 ‘KUS-VT’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북한 경비정의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해군 222전진기지에 신속하게 전송한다. 우리 군함이 출동하자 북한 경비정은 줄행랑을 친다. 틸트로터 무인기는 군함 갑판 위로 헬리콥터처럼 착륙하며 임무를 완수한다."지난 8일 대전에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무인항공기 시뮬레이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1층엔 그 동안 실험을 위해 만든 무인항공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연구원들이 틸트로터 무인항공기 ‘KUS-VT’의 모형을 살표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8일 오후 대전의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강완구 연구기획팀장이 개발 막바지 단계인 ‘세계 최초 틸트로터 상용 무인기’로 북한 경비정을 쫓아내는 시뮬레이션 상황을 실감 나게 연출했다. 틸트로터는 헬리콥터처럼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이동 중엔 회전날개를 기울여 일반 비행기와 같은 방식으로 비행하는 차세대 항공 기술이다. KUS-VT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대한항공이 공동 개발, 2011년 미국에 이어 세계 둘째로 확보한 원천기술로 탄생했다. 헬리콥터보다 두 배 빠른 최대 시속 250㎞로 지상 4.5㎞의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어 넓은 지역의 감시·수색·정찰에 좋다.
김인화 항공기술연구원장은 “틸트로터 기술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며 “202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2024년엔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안보에 주력하는 분단국의 특수성 때문에 군용 무인기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도 격차가 5년에 불과하다. 항우연에 따르면 무인기 관련 특허 출원도 한국이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다. 특히 기체 조립과 설계 분석 능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독차지한 드론 시장을 한국이 뚫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다. 맥킨지의 오세윤 서울사무소 부파트너는 “군용 시장에 머물 게 아니라 소비자의 요구를 읽고 그에 맞는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완구 대한항공 팀장은 “중국이 선점한 상업용 무인기 시장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운송이나 소방, 인명 구조에 중점을 둔 공공산업용 무인기 분야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규제다. 무인항공기 분야의 성장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국내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에선 무인기 사업이 안보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로봇과 달리 무인항공기 소관 부처는 국토교통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무인항공기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촬영을 한다면 국방부와 국군기무사령부·국토부(서울지방항공청) 등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행금지구역인 서울 도심 상공에서 허가 없이 드론을 날리면 항공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취미용 드론이라도 야간에 한강에서 비행하거나, 집 앞 공터라도 비행금지구역이면 처벌 대상이다.
국내 무인항공기 제조업체인 엑스드론의 진정회 대표는 “무인기 운용의 핵심인 공역(空域·비행 공간)을 넓히고 제각각 사용되는 주파수 기준도 마련 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무인기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항우연의 주진 본부장은 “기획재정부에서 ‘규제자유지역(free zone)’을 두고 각종 신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는 데 내년에 3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이 중 무인기 연구개발과 관련한 예산이 3000억원”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드론 연구에 한창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무선사업부 내에 15명으로 구성된 무인기 사업팀을 꾸려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한화는 무인항공기 분야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해 2007년 관성항법 전문업체 센텍을 연구소에 합병한 데 이어 2010년엔 초소형 무인항공 시스템인 크로의 개발사 ‘마이크로에어로봇’도 인수했다.
기술이나 규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 수립이다.
한국항공대 송용규(기계공학부) 교수는 “드론 개발은 기본 기술만 존재한다고 바로 실용화되지 않는다”며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지 말고 드론 산업 육성을 위해 10년 앞을 내다보는 구체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대전=곽재민 기자, 강민경 인턴기자 jmkwak@joongang.co.kr
김인화 항공기술연구원장은 “틸트로터 기술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며 “202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2024년엔 본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안보에 주력하는 분단국의 특수성 때문에 군용 무인기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인 미국과도 격차가 5년에 불과하다. 항우연에 따르면 무인기 관련 특허 출원도 한국이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다. 특히 기체 조립과 설계 분석 능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독차지한 드론 시장을 한국이 뚫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다. 맥킨지의 오세윤 서울사무소 부파트너는 “군용 시장에 머물 게 아니라 소비자의 요구를 읽고 그에 맞는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완구 대한항공 팀장은 “중국이 선점한 상업용 무인기 시장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운송이나 소방, 인명 구조에 중점을 둔 공공산업용 무인기 분야에 진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문제는 규제다. 무인항공기 분야의 성장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국내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에선 무인기 사업이 안보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로봇과 달리 무인항공기 소관 부처는 국토교통부·국방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무인항공기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촬영을 한다면 국방부와 국군기무사령부·국토부(서울지방항공청) 등에서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행금지구역인 서울 도심 상공에서 허가 없이 드론을 날리면 항공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취미용 드론이라도 야간에 한강에서 비행하거나, 집 앞 공터라도 비행금지구역이면 처벌 대상이다.
국내 무인항공기 제조업체인 엑스드론의 진정회 대표는 “무인기 운용의 핵심인 공역(空域·비행 공간)을 넓히고 제각각 사용되는 주파수 기준도 마련 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무인기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항우연의 주진 본부장은 “기획재정부에서 ‘규제자유지역(free zone)’을 두고 각종 신기술을 개발하도록 하는 데 내년에 3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라며 “이 중 무인기 연구개발과 관련한 예산이 3000억원”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드론 연구에 한창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무선사업부 내에 15명으로 구성된 무인기 사업팀을 꾸려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한화는 무인항공기 분야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해 2007년 관성항법 전문업체 센텍을 연구소에 합병한 데 이어 2010년엔 초소형 무인항공 시스템인 크로의 개발사 ‘마이크로에어로봇’도 인수했다.
기술이나 규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 수립이다.
한국항공대 송용규(기계공학부) 교수는 “드론 개발은 기본 기술만 존재한다고 바로 실용화되지 않는다”며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지 말고 드론 산업 육성을 위해 10년 앞을 내다보는 구체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대전=곽재민 기자, 강민경 인턴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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