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6.03.29. 01:37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김재길 사무관의 말이다. ‘서울의 얼굴’인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현판 바탕과 글자의 색이 뒤바뀌었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최근 새로 발견된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현판 고해상도 사진을 구해 육안으로 확인했다”며 “바탕이 글자보다 더욱 어둡게 나왔다. 바탕이 검은색, 글자가 흰색일 수 있다. 나아가 글자가 흰색인지 금색인지, 사진·그래픽 전문가들의 정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화문 현판이 또다시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광화문 복원 직후 목판 균열 논란이 인 데 이어 이번엔 현판 색깔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원형 복원이란 문화재 보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광화문 현판 ‘2라운드’가 펼쳐질 모양새다. 2010년 균열 문제로 재제작이 결정된 현판은 현재 목재 건조 작업 중이다. 지난 27일 광화문광장. 관광객들이 광화문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잇따라 눌렀다. 현판 바탕은 흰색이고, 글자는 검은색이다. 6년 전 복원했던 그 모습이다. “흑백이 바뀌었다”는 이번 논란은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본명 김영준) 대표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입수한 사진을 이달 초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1893년 9월 이전 촬영된 광화문 사진이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임을 분간할 수 있다. 2005년 문화재청이 복원 근거로 삼았던 도쿄대 유리원판 사진(1916년 촬영)의 디지털 분석 결과를 뒤집는 사진이다.
문화채청은 복원 당시 자료의 한계를 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리원판 사진과 보존 상태가 보다 양호한 도쿄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 외에 참고할 자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2010년 복원 용역 보고서를 작성한 세종대 백성욱 교수는 “현판 원형이 보존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현판 색깔보다 글자 모양을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반면 복원 당시에도 반론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 관계자는 “유리 원판에서 디지털 복원한 글자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이를 사용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여러 사진 자료를 보면 현판 바탕은 검은색이 대세였다. 우선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외교자문 호모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1910)에 등장하는 광화문 사진에서 현판은 검은색으로 나와 있다. 글자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일본 미술사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편찬한 『조선고적도보』(1905)에 나오는 사진 색깔도 비슷했다.
그림·엽서 등에서도 현판 바탕은 검은색이었다. 조선 궁중화원 출신 안중식이 1915년 경복궁 주변을 그린 ‘백악춘효도’(등록문화재 제485호) 두 점에서 광화문 현판은 검게 처리됐다. 다만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서양화가 심형구가 1940년 그린 광화문 그림에서도 바탕은 검은색, 글자는 흰색으로 나타났다. 그림엽서로도 유통됐던 이 그림은 한국건축역사학회지 2008년 10월호에 소개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68년 광화문을 콘크리트 복원하면서 건 한글 현판에서도 바탕은 검은색, 글자는 흰색이었다.
조선시대 현판은 크게 3가지로 제작됐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흰 바탕에 검은 글씨다. 명확한 제작 원칙은 전해지지 않지만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등 궁궐 정문은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현판과 근정문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다. 금색은 임금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관련 기사
① 이순신 동상 → 총독부 철거 → 광장 조성 … 정권마다 ‘광화문 성형’
② 광화문 현판 한글이냐, 한자냐 … 4대문 5대궁 살펴보니
『우리 궁궐 이야기』를 쓴 명지대 홍순민 교수는 “경복궁은 궁궐 가운데 가장 격이 높았다. 현판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 혹은 금색 글씨일 가능성이 크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종 자료와 전문가 견해를 토대로 새 현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866년 고종 때 중건된 광화문 현판은 51년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소실됐으며, 문화재청은 고종의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의 글씨를 토대로 지금의 현판을 복원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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