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이굴기의 꽃산 꽃글]모데미풀

바람아님 2016. 4. 13. 00:27
경향신문 2016.04.11. 21:24

조금 이국적 이름의 그 꽃을 본 건 소백산에서였다. 천동계곡에서 올라 비로봉에 거의 다다를 무렵 등산로 가까이에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지리산 자락의 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지명을 따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바람에 나부끼며 해맑게 웃는 꽃들을 보는데 생뚱맞게도 무궁화 꽃잎을 본떠 디자인했다는 국회의원 배지가 생각났다. 톱니처럼 잘게 갈라져 전체적으로 펜타곤 모양인 포엽을 배경으로 5장의 흰 꽃받침잎이 있다. 그 안에 수술과 암술, 노오란 작은 꽃잎이 모여 오밀조밀한 문양을 만들고 있는 꽃, 모데미풀이다.

지금 전국 방방곡곡마다 국회의원 선거 열기로 뜨겁다. 골목을 메우는 요란한 선거구호와 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을 뒤로하고 강원도의 어느 산을 오른다. 지난 몇 년간의 적폐처럼 쌓인 낙엽들. 나무가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는 건 까닭이 있다. 힘든 겨울에도 생존하려고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몸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 생각하면 이는 나무가 행사하는 고귀한 한 표이기도 하다. 나무들은 이 투표행위를 통해 산을, 다시 말해 저들의 세상을 바꾸었다. 그래서 스산한 가을을 갈아치우고 청신한 겨울을 맞이하였고 그리하여 마침내 봄을 세웠다. 바야흐로 산에는 새로운 세상이 무르익었다. 새는 지저귀고 꽃은 핀다. 이 모두 산을 바꾸겠다는 나무의 의지가 모이고 쌓여서 이룬 결과임이 자명하다.


지금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들 한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 했다. 정치란 바른 것이라는 뜻이다. 다섯 획으로 이루어진 ‘正(정)’은 뒤집어 거꾸로 보아도 글자가 거의 같다. 바르다는 건 언제나 어디에서나 항상 바르다는 것을 함의하는 게 아닐까.


지난 시절 잎들이 일제히 몸을 던져 물꼬를 튼 세상의 변화가 도래했다. 봄이 온 것이다. 흙에서 나왔지만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깨끗한 꽃들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사람들의 선거. 우리 또한 그렇게 나무들처럼 우리들 세상을 홀랑 뒤집어놓기를! 모데미풀 앞에서 그런 궁리를 해보았다.


한국특산식물.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궁리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