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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다나카 가쿠에이의 부활

바람아님 2016. 4. 27. 00:35
[중앙일보] 입력 2016.04.2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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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도쿄총국장


일본 전후사에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1918~93)만큼 스토리가 많은 총리는 없다. 8년 과정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막일꾼에서 토건회사 사장을 거쳐 72년 최연소(54) 총리가 됐다. 퇴임 후에는 미국 록히드사 여객기 도입과 관련한 재임 시 수뢰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보석으로 풀려난 다음에는 피의자 신분의 무소속 의원이면서도 거대 파벌 영수로서 집권 자민당을 주물렀다. 오히라·스즈키·나카소네 정권은 다나카파 지원으로 탄생했다. 다나카가 ‘어둠의 쇼군(闇將軍)’으로 재군림하던 시기였다. 입지전적 서민 재상에서 금권정치의 본산까지 다나카의 삶은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요즘 일본에서 다나카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 이래 그에 관한 책이 13권이나 출간됐다. 타계 후 나온 책은 모두 140권이나 된다고 한다. 최근작의 백미는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의 『천재』다. 책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다나카 비판의 선봉에 섰던 국수주의자 이시하라가 그의 인생 역정을 1인칭 논픽션 소설로 그려냈다. 이시하라는 74년 문예춘추 기고문을 통해 다나카 금권정치 비판의 물꼬를 트면서 총리 실각의 한 계기를 만들었다. 그랬던 그가 다나카를 천재·애국자로 재조명했다.

이시하라가 주목한 것은 선견지명이었다. 다나카는 33개의 의원 입법을 했다. 공영주택법과 도로법 등 대부분 생활 인프라 정비와 국토 개발에 관한 것이었다. 다나카는 논쟁이 붙었을 땐 현장주의를 내걸었다. “당신은 막일꾼으로 땀을 흘려가며 무개차를 밀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말을 곧잘 했다고 한다. 우정상 때는 43개 방송국을 허가해 TV 시대를 열었다. 일본열도개조론은 니가타현 출신인 다나카의 원점이었다. 도시와 지방 간 격차 해소를 위해 고속철 신칸센과 공항·도로를 확충했다. 대규모 공단도 세웠다. 인프라 선진국 일본의 면모는 이때 갖춰졌다. 이시하라는 “전후 번영과 새로운 문화·문명의 상당 부분을 다나카가 만들었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공공사업은 다나카의 금맥이기도 했다. 이시하라는 록히드 사건을 미국의 음모로 본다. 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이듬해 1차 오일쇼크 당시 미국 석유 메이저에 의존하지 않은 자원외교의 자주 노선이 화근이었다는 생각이다. 『천재』는 1월 발간 이래 60만 부를 돌파했다.

다나카 붐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논픽션 작가 오시타 에이지는 “현재의 증류수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한다(마이니치신문). 위기와 정체의 시대에 정(情)과 파워가 함께 있었던 다나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국민의 기대감이 녹아 있다고 했다. 다나카 비서를 지낸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은 인간학의 천재라고 소개했다. 두둑한 배짱의 뒷면에 세심한 배려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 얘기의 공통분모는 사람 냄새 풀풀 나고, 국민에게 꿈을 심어준 정치인 다나카다. 그는 결단과 실행의 지도자로도 기억되고 있다. 지도자와 정치인의 참리더십에 목말라 있는 나라는 일본만이 아닐 듯싶다.

오영환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