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찾아온 이들은 나처럼 군복을 입은 후배들이었다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의 작업표지판을 세운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유해를 발굴하러 온 모양이오. 젊은 군인들이 내 군화의 밑창을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소. 그럴만도 하지요. 내가 물구나무 선 자세로 묻혀 있었으니까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청년들이 다 헤진 군화를 벗겨내고는 발가락뼈를 하얀 종이에 담았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내 육신을 휘감은 나무뿌리를 잘라내었소. 그 순간 내 영혼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소. 청년들이 조심스럽게 내 육신을 붓질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소.
젊은이들은 나의 유해를 오동나무 관에 담은 뒤 태극기로 감쌌소. 내가 목숨 바쳐 사랑한 조국의 국기로 말이오. 그런 뒤 제사상을 차려주었소. 북어포와 술 한 잔뿐인 조촐한 차림이었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진수성찬이었소.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앳된 장병들이 거수경례를 올릴 때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소. 주책없이 젊은 시절 내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뒤늦은 방문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소. 그대들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나처럼 6·25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땅속에 묻힌 사람은 13만명이 넘는다고 들었소. 그중에 유해를 발굴한 이가 9100명이라지요. 그런 사람에 속한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 아니겠소. 나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꿈같은 일일 테지요. 유전자 대조를 거쳐 가족을 찾으려면 다시 확률 1%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니 말이오. 아무려면 어떻소. 나는 이미 행운아인 걸요.
이제 회한이 없소. 다만 유감스럽게 여기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방위산업 비리라오. 얼마 전에도 전·현직 군 간부들이 업체의 로비에 놀아나 진흙탕 싸움을 벌인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들통나지 않았소. 몇몇 부패 군인들 때문에 수많은 군인들이 낡은 싸구려 침낭에서 잠을 잔다니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오. 저질 건빵, 곰팡이 핀 햄버거, 불량 무기 등 내가 아는 추문만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소. 하늘에서 도저히 안식을 취할 수 없을 지경이라오.
나를 찾아준 후배 군인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것이 그만 췌언이 되고 말았소. 부디, 조국의 안녕을 부탁하오. 천국에서 그대들의 활약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리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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