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회성도 노력이고 노동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감정노동자다.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를 감정노동자로 부른다고 하는데, 고객 응대 업무가 없는 평범한 회사원도 직무의 20% 정도는 감정노동이 아닐까. 월급쟁이 기자도 취재 업무 외 감정노동이 꽤 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기사가 ‘킬’될 때, 선배가 쓸데없이 고친 문장 때문에 나 혼자 부장에게 욕을 먹을 때 의젓한 표정의 가면으로 속내를 감춘다. 집에 들어가면 “저녁은 먹었니? 너 좋아하는 반찬 해놨어”라는 엄마 말도 대꾸하기가 싫고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로 씻고 잠이 든다.
점심이 딱 한 시간의 칼 같은 직장이라면 감정노동의 강도가 더 세진다. 대기업에 다니는 A 대리, 점심시간마다 신경이 곤두서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성토한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몰려 3분만 늦게 복귀해도 상사가 시계와 A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를 주고 5분 늦는 날엔 “너무 늦게 온 것 아니냐”고 대놓고 지적을 받는다고 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1200명 정도에게 물었더니 86.2%가 ‘현재 직장에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이 숨긴 감정은 분노. 섭섭함과 우울감이 뒤를 잇는다. 일주일에 35시간(제조업 평균)밖에 일을 안 하는 독일에서도 노동자 4000만 명 가운데 10% 정도인 410만 명이 정신적·감정적 고통을 경험한다는데, 주 6일을 밥 먹듯 하는 우리나라야 오죽하랴.
1년 전만 해도 욱하고 화가 치밀면 친한 동료들과 모여 “아오, 확 그냥, 내가 여차하면 그만둔다”고 허장성세를 부렸다. 사실 결혼, 전세대출, 아기 침대가 머리에 떠돌아 그만두지는 못하지만 말로 쓴 사표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긴 충분했다. 그런데 불황은 깊어만 가고 회사 바깥은 더 춥더라는 흉흉한 이야기만 들려오니 이제 그런 허세도 사치다.
출근길에 탄 택시에서 이런 안내 스티커를 봤다. “손님과 저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평소 다니시는 길이 있으면 편안히 말씀해주세요.” 이런 마음이라면 일터에서 조금 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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