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1.14 김민희 주간조선 기자 편집=최원철)
[주간조선:고독의 힘 말하는 배철현 서울대 교수]
지난해 서점가를 강타한 유행어는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은 출간 5개월 만에 무려 17만부가 팔렸고,
김정운 교수의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 역시 종합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진입했다.
이 외에도 지난 하반기 동안에만 ‘개인주의자 선언’(문학동네), ‘고독이 필요한 시간’(카시오페아),
‘나와 잘 지내는 연습’(라이스 메이커) 등의 신간이 쏟아졌다.
'‘인생학교 서울’에서는 제일기획 스타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씨가 ‘혼자 있는 시간 잘 보내는 법’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
지난해 하반기에 쏟아진 ‘혼자 있는 시간’ 관련 책들. /주간조선
왜 한국인들은 ‘혼자’ ‘고독’ 관련 책을 골라 읽었을까.
‘혼자 있는 시간’ 관련 서적 열풍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는 현실을 역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시간’이란 양(量)의 개념이 아니다. 나홀로족(族)은 오히려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14년 여가를 ‘혼자서’ 보낸 사람은 56.8%나 됐다. 7년 전에 비해 무려 12.7%로 증가한 수치다.(문화체육관광부 자료)
결국 문제는 ‘혼자 있는 시간’의 질(質)이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는 얘기다.
위의 책 저자들은 하나같이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생각의 힘은 고독에서 나와 |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 교수/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서울대 배철현 교수(종교학)는 정색하고 이렇게 말한다.
“생각의 힘은 고독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것은 ‘혼자 있기’와 ‘혼자 생각하기’다.”
국내 유일의 고전문헌학자인 배 교수는 본질을 캐묻는
‘문제적(問題的) 강의’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인문·예술·과학을 망라한 강의로 21세기형 인재를 양성하는
‘건명원’의 산파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건명원’은 ‘세상에 없던 학교’로 불린다.
배철현 교수는 ‘자발적 고독’을 자처한다.
경기도 가평군 호숫가에 살면서 일주일에 3~4일간 두문불출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침에 일어나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골방 한가운데 반가좌를 틀고 앉아 그날 할 일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에게 놀라운 생산성을 안겨다줬다.
최근 그는 5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책 두 권을 동시에 냈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21세기북스)이다.
두 권 분량을 합치면 1000쪽이 넘는다.
한 월간지에 3년간 연재한 글에 3분의 2를 새로 써서 완성했는데 이를 위해
그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했다.
배 교수를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학교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애초에는 그의 혼자만의 공간인 경기도 가평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가평에서의 인터뷰 제안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평 집은 공사 중입니다. 혼자 있는 공간을 넓히는 중이에요.”
이 말도 덧붙였다. “연구실도 충분히 고독합니다.” 과연 그랬다. 흰색 책장으로 꾸민 연구실은 깔끔하다 못해 적막했다.
방학 중이라 온풍기도 틀지 않아 냉기 때문에 손이 시렸다. 창밖으론 앙상한 겨울나무가 보였다.
- 오늘 아침에도 반가좌를 틀고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나.
“그렇다. 오늘 할 일을 생각했다. 조금 전에도 오늘 인터뷰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을 예상하고 할 말도 생각해뒀다.
그리고 이 커피도.(그는 인터뷰 시작 시간에 딱 맞춰 따끈한 아메리카노 세 잔을 사 뒀다.)
가평 집에서 출퇴근한다. 거리상으로는 70㎞가 넘지만 춘천고속도로를 타면 40~50분 만에 주파한다.”
-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가평으로 이사를 한 건가.
“호숫가 있는 고요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가평도 집이라 일상의 공간이다.
집을 ‘현관’ 같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관(玄關)은 불교용어로, 세속과 극락세계의 사이 공간이다.
일상과 몰입의 경계라고 할까. 일상을 현관으로 만들기 위해 옷도 따로 입고, 아내한테 방문을 밖에서 잠그라고 한다.”
- 문 밖에 자물쇠가 있는 건가.
“따로 달았다. 몰입을 위해서다. 몰입하면 2~3시간 만에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원고도 쓴다. 몰입 상태를 길게 유지하는 것은 깊은 생각이 필요한 직업에 꼭 필요하다. 특히 CEO(최고경영자)나 대통령 같은 정치인에게.”
- 혼자만의 시간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계기가 있었다. 나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인문학 확산에 관심이 많아 2007년엔 서울대에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을 개설했고 국회에도 인문학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다니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왜 사는가’ 본질적인 고민을 했다.
두 가지 답을 찾았다.
한국 사회를 위한 공헌을 하고, 스스로 내 자신이 되는 것. 2011년부터 다르게 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독함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왜 사는지' 고민으로
진짜공부 실천,
편견을 강화한 공부는 잘못된 것
-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했나.
“술을 끊고 사람을 안 만났다. 일상에서는 어렵다고 판단해 제주도 서귀포에 내려가 6개월간 처박혀 지낸 적도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거리를 뒀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깊이 들여다보는 내 자신은 다르다.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란 편견에 둘러싸인 나로부터의 결별 선언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는 건 편견이자 오만이다.
우리는 대개 편견을 강화하기 위해 공부한다. 잘못된 공부다. 소통이 안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무아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진짜 공부다.
소크라테스가 왜 위대한 줄 아나?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그렇다고 한 지식을 아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기가 아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
- 달라진 생활방식에 대해 주위에서 뭐라고 하던가.
“배신했다고 하더라. 자기들을 술판으로 끌여들여 놓고 빠졌다고.(웃음)
동창회, 향우회 등 끼리끼리 문화는 좋은 것 같지만 나쁜 점도 많다. 끼리끼리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어느 지역의 어디 학교 출신인지는 새로운 나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 자신을 과거에 옥죄는 거다. 10년 후에 무엇을 할지,
10년 후를 위해 오늘의 내가 무엇을 할지 같은 건전한 대화가 돼야 하는데 끼리끼리 문화에서는 어렵다.”
- 서귀포에서의 일상은 어땠나.
“단순하다. 공부하다 바다를 봤고, 바다를 보다 공부했다. 그저 혼자 있어 보는 것이 중요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소로(‘월든’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개념으로 보자.
외로움(loneliness)은 누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고, 고독(solitude)은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대포 한 잔’ 하고픈 건 외로움이다.
소로가 외딴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혼자서 3년간 살아보는 건 고독이다.
인생을 정교하게 살면서 인생의 본질을 맞딱뜨리고 싶은 거다. 그런 삶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고 압도적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나만의 선율을 연주해야 감동을 준다. 다른 사람의 음악을 흉내 내면 감동이 없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식이고, 흉내는 자살 행위다.”
- 한국인은 흉내의 달인들이지 않나.
“중진국에서는 그래도 된다.
삼성은 어찌 보면 흉내 내기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
일등기업이라고 착각하는데 냉철해져야 한다. LG나 학자들도 마찬가지고.
어느 경지에 오르면 스스로 자기만의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이미 늦었다.”
- 자기만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묵상(默想=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을 해야 한다.
묵상은 기도와는 다르다. 기도(祈禱)의 한자를 보자. ‘祈(기)’는 ‘볼 시(示)’ 자와 ‘도끼 근(斤)’ 자로 이루어져 있다.
도끼를 들고 신한테 위협하는 거다. ‘수능 잘 보게 해주세요’ 같은.
신은 절대로 그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진짜 기도란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거다. 일상에서 말과 행동의 99%는 과거의 습관을 따른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의 습관을 벗어나 각자가 할 일을 확인하는 거다.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제3자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다.
외롭게 혼자 있는다고 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학은 죽음의 시점에서 나를 봐…
자신의 길은 결국 자신에게서 나와,
한국인의 문제는 자아성찰 결여돼
강의중인 배철현 교수. /조선일보 DB
- 통계를 보면 한국인은 ‘나홀로족’이 늘었는데.
“혼자만의 시간에 게임을 하거나 멍하니 있다면 의미가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
새로운 시각에서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상과 몰입을 해야 한다.
묵상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게 돼 있다.
묵상이란 자기 자신을 100m 위에서 독수리의 눈으로 찍어보는 거다.
개인도 그렇지만 특히 리더는 혼자 있는 묵상의 시간을 통해 남다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묵상을 하다보면 몰입을 통해 연민이 생긴다.
모든 학문의 기본은 몰입을 통한 연민이다. 동물학은 동물 입장에 몰입해서
동물을 보는 것이고, 식물학은 식물 입장에서, 천체물리학은 별의 입장에서,
환경학은 강(江)의 입장에서 환경을 보는 거다.”
- 그럼 종교학은 뭔가.
“죽음의 시점에서 나를 보는 거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자기가 죽을 것을 아는 유일한 존재이니까.”
- 최근 두툼한 종교 서적 두 권(‘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을 동시에 냈다. 어떤 심경으로 썼나.
“세상에는 세 가지의 책이 있다. 안 읽어도 되는 책, 좋은 책, 위대한 책.
위대한 책은 그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를 변하게 하는 책이다. 성서는 종교 서적이기 이전에 고전의 꽃이다.
단테, 셰익스피어, 윌리엄 블레이크에게 상상력을 제공했고,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작품만큼이나 위대한 책이 바로 성서다.
그게 20세기 초 근본주의에 납치돼서 보수적이고 재미없는 종교 서적으로 읽히고 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성경은 스스로 자기를 발견해서 자기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한 인간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자기 계발서’라고 할까.
이 책은 히브리어로 된 성서를 오랫동안 읽어온 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책이다.
교리에 납치돼 해석한 게 아니라. ‘성서의 저자는 무슨 마음으로 썼을까’에 집중했다.”
- ‘신의 성소(聖所)는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는 책 속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그게 답이다. 천재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못생기고 흉한 모습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이다.
모차르트, 피카소, 스티브 잡스 다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였다. 생모는 미혼모였고, 아버지는 시리아 출신이었다.
오바마 역시 케냐 이민 2세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재혼 후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얼마나 콤플렉스 덩어리인가. 하지만 이들은 못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역사를 바꾸었다.”
-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그렇다. 자기 자신이 온전한 존재인데 왜 비교하나. 나한테 길이 있는 거다.
남과 비교하면서 남과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고유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의 가장 큰 죄는 비교다.
종교는 어머니와 같다. 내 어머니가 있듯, 다른 종교에도 그들의 어머니가 있다.
내 어머니만이 아인슈타인이고 미스코리아라고 주장하는 건 무식한 거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다른 종교, 다른 사람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 현재 한국의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시 묵상과 연민(憐憫)이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거다.
남의 말 그만 듣고, 받아적기 그만하고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
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이 쌓여야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각자의 내공이 있어야 하고, 역지사지를 통해 연민(憐憫)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때의 연민(憐憫)은 프랑스의 톨레랑스와는 다르다.
톨레랑스는 참아주는 거다. 하지만 연민은 원수를 사랑하는 상대방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게 진정 이타심이고 사랑이다.”
-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묵상과 연민이 필요한가.
“인류의 발달 단계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이드’ 단계,
두 번째는 대화도 할 줄 알고 남을 의식할 줄 아는 ‘에고’ 단계,
세 번째는 나를 넘어선 ‘수퍼 에고’ 단계.
현재 한국의 국가와 기업은 첫 번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일류는 언제 2등에게 먹힐 줄 몰라서 불안하고,
서로 물고 뜯는 형국이다.
선진국은 세 번째 단계다. 이타심의 가치를 높이 살 줄 알아야 선진국이다.
이타심을 설득력 있게 설파해야 하는 사람이 리더이고, 이런 사람들이 망처럼 촘촘해진 사회가 선진국이다.
이타적 가치가 도덕이나 사회보장제도로 정착된 노르웨이나 덴마크, 프랑스 같은 국가가 선진국이다.”
- 이어령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해 6월 이 교수는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개인주의자이면서도 이웃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베푸는 초월적 개인들이 선진국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한국도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떼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바로 그거다. 이타적 개인. 그러려면 먼저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깨달아야 한다.
19세기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자기 자신을 위한 노래(Song of myself)’에서
‘나는 내 자신을 축하하고 내 자신을 노래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도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별이 있다. 그 마음속 별이 저 하늘의 별보다 더 위대하고 쓸모 있다.
한국인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거다.
내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야 남도 소중하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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