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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하여

바람아님 2016. 7. 10. 09:50

(출처-조선일보 2016.07.09 어수웅 Books팀장  박혜진 문학평론가·2015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신동흔 기자  정상혁 기자)

[여름휴가에 가져갈 단 한권의 소설]

BOOKS 두 번째 여름특집, 이번엔 소설입니다

어수웅 Books팀장'천일야화'(千一夜話)에는 앞 뒷 토막이 있습니다.

우선 분노에 치를 떠는 왕의 광기. 최초의 왕비가 자신을 배신하고 남녀 노비들과 음란한 밤을 
보냈기 때문에, 왕은 매일 새 왕비를 들이고 다음 날 아침 목을 벴다는 것이죠. 
요즘 말로 하면 '여혐'(여성 혐오)의 뿌리입니다. 뒷 토막에는 현실과의 타협이 있습니다. 
1001일의 밤 이야기를 마친 뒤, 새 왕비 셰에라자드는 아이를 낳죠. 
현실과 타협하고, 밤마다 지어내던 새 이야기도 중단합니다.

하지만 Books의 여름특집에는 중단이 없습니다. 
살기 위해 매일 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어린 왕비 셰에라자드의 목숨을 건 창작.

Books의 여름특집 2회는 신간 소설입니다. 두 권의 한국문학과 두 권의 외국문학을 골랐습니다.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2016년 가장 젊은 한국문학 중 하나입니다. 
올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은 표제작을 필두로 9편의 단편을 묶었습니다. 
임성순의 길지 않은 장편 '자기개발의 정석'은 대한민국 중·장년 세대를 위한 Books의 추천입니다. 
자의식이나 내면이 아니라, 회사라는 구체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포복절도의 블랙코미디죠.
여름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하여
/Getty Images 이매진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와 '스테이션 일레븐'은 우리 시대의 차이와 격차를 줄여보려는 
Books의 제안입니다. 실리콘밸리와 헌책방을 왕복하는 '모든 일이…'는 SNS와 종이신문 세대 모두에게, 
지구 종말 이후에 펼쳐지는 삶 '스테이션 일레븐'은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그렇지 않은 독자 모두에게 권합니다.

이번 주에는 소설가 김훈이 읽은 '장자'를 함께 띄웁니다. 
"책 속에 무슨 길이 있나. 길은 길 위에나 있을 뿐"이라며 청탁을 고사하던 작가는, 일산 호수 공원의 여름 나무 그늘에서 
읽은 '장자'에서 길 하나를 찾은 듯합니다.

편집국 창밖으로 여름 매미가 웁니다.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처럼, 바위 속으로 스며드는 고요함. 
Books의 여름 소설과 함께 고요한 여름 보내시기를.

        

[소설가 김훈이 보내 온 '여름 편지'] - 莊子

푸른 연꽃을 통역사 삼아 늙은 부부가 말없이 대화합니다


(출처-조선일보 2016.07.09 김훈 소설가)


김훈 소설가김훈 소설가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 
젊은 부부의 어린애는 그늘에 누워서 젖병을 물고 있고 병든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온 노인은 아내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물을 먹여주고 입가를 닦아주었다.

호수의 물고기들 중에서 어떤 놈은 내가 물가로 다가가면 나에게로 와서 
꼬리 치는데, 아 저 사람 또 왔구나, 하면서 나를 알아보고 오는 그놈이라고 
나는 믿는다. 연꽃의 흰 꽃잎에는 새벽빛 같은 푸른 기운이 서려 있어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연꽃은 반쯤 벌어진 봉우리의 안쪽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거기는 너무 순수하고 은밀해서 시선을 들이대기가 민망했다. 
넓은 호수에서 연꽃들은 창세기의 등불처럼 피어 있었다.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것이어서 여름 호수에 연꽃이 피는 
사태는 언어로서 범접할 수 없었다. 일산호수공원의 꽃들은 언어도단의 세계에서 피어났고 여름 나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빛났다. 
나무들은 땅에 박혀 있어도 땅에 속박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 속에도 저러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연꽃을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이 자명했고,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내 옆의 노부부는 나무 그림자가 길어지고 빛이 엷어질 때까지 말없이 연꽃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부부는 연꽃을 통역사로 삼아서 말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장자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보다 사물과 사람과 사태를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 
이틀째 '장자'를 읽고 있는데 신문사에서 '여름에 읽을 책'을 골라보라고 해서 
주저 없이 '장자'로 정했다. 책을 읽는데 무슨 여름 겨울이 있으랴마는 
'장자'는 여름의 나무 그늘에서 읽어도 좋고 눈에 파묻혀서 세상이 지워지는 
겨울밤에 읽어도 좋다.

'장자'는 순결한 삶, 자유로운 정신, 억압 없는 세상의 모습을 역동적 드라마로 
제시한다. '노자'는 사상의 원형이며 뼈대일 터인데, 여기에 판타지를 넣고 
스토리를 엮어서 인간세에 적용시키면 '장자'가 된다. 
'장자'는 인간의 수많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의 근저를 부수어버림으로써 인간세의 끝없는 시비를 끝낸다. 
질문이란 대체로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은 짧은 줄에 목이 매어져서 이념, 
제도, 욕망, 언어, 가치, 인습 같은 강고한 말뚝에 묶여져 있다.
짧은 줄로 바싹 묶여져서, 괴로워하기보다는 편안해하고 줄이 끊어질까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장자'가 마음의 도끼질로 이 목줄을 끊어 주는데, 줄이 끊어지면서 드러나는 세계의 질감은 가볍고 서늘하다.

공원에서 연꽃과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장자'를 생각했다. 
연꽃이 '장자'이고 물고기가 책이었다. 
아름다운 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거꾸로 써도 마찬가지다. 
내년 여름에는 또 새 매미가 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