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닷컴 2016.07.23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제멋대로 읊는다
입은 말하지 않고 귀는 듣지 않은 지 오래지만
그래도 두 눈은 남아 또랑또랑 뜨고 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상만사
볼 수는 있어도 말할 수는 없구나.
浪吟
口耳聾啞久(구이농아구)
紛紛世上事(분분세상사)
能見不能言(능견불능언)
조선 전기의 선비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 1475~1546)이 지었다.
그는 혼란한 연산군과 중종 시대에 지조를 지켜 고향 강릉에 물러나 살았다.
광기의 세상에도 권력과 부를 향해 정신줄 놓고 달려드는 사람들 많다.
세상이 미쳐 날뛸 때 그들과 함께 미친 척하고 나서야 한 자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오히려 입도 귀도 닫아버렸다.
귀로 듣고 정직하게 말로 내뱉었다가는 자칫 큰코다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세상 몰라라 할 수 있을까? 눈을 벌겋게 뜨고 지켜보며 견뎌야 한다.
그는 광기와 폭압의 시대를 견디는 정신을 밝혀서
"내가 배움도 없으면서 진사에 급제했으니 욕됨이 없어 좋고,
땅도 없으면서 날마다 두 끼를 먹으니 굶주림이 없어 좋고,
덕망도 없으면서 산수에 머무니 속됨이 없어 좋다"라고 했다.
세 가지가 좋다는 '삼가'란 호는 그런 뜻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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