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비 갠 저녁

바람아님 2016. 7. 16. 07:26

(출처-조선일보 2016.07.1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비 갠 저녁


창문 열고 발을 올려 
비 갠 저녁 내다보니
여름 하늘 맑고 파래
가을 온 듯 선선하다.


벌써 골목에는 덜컹덜컹
나무 실은 수레 들어왔고
무논에는 이제 한창
모심는 기구 다니겠군.


푸른 산은 허공을 밀쳐
옛 빛깔로 돌아왔고
고운 노을은 나무를 잠가
아쉬운 정을 가라앉힌다.


오늘 밤은 띠를 풀고
잠을 자러 서둘지 말고

성안 가득한 은하수를
마냥 앉아 기다려야지.

晩晴


拓戶鉤簾愛晩晴(탁호구렴애만청)  

夏天澄綠似秋生(하천징록사추생)




已聞巷裏樵車入(이문항리초차입)  

正憶田間秧馬行(정억전간앙마행)




靑嶂排空回舊色(청장배공회구색)  

綺霞沈樹澹餘情(기하침수담여정)




今宵解帶不須早(금소해대불수조)  

坐待星河拂滿城(좌대성하불만성)



<각주 : 무논 [명사] 1.물이 괴어 있는 논. 2.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논. = 수전(水田)>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구한말의 시인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여름철 비가 개고 난 뒤의 저녁 풍경과 감회를 썼다.

비가 개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가을이  불쑥 온 듯 청량하다. 

날이 개자마자 나뭇짐을 실은 달구지가 벌써 골목길을 다니며 나무를 판다. 

들녘 논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서두를 게다. 

허공을 밀치며 푸른 산은 짙푸른 빛깔을 회복했고, 노을은 하루해가 가는 아쉬운 마음인 양 저문다. 

여름날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맛보기 참 힘들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서울의 밤하늘을 맑게 뒤덮을 은하수를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