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바람아님 2016. 7. 9. 08:08

(출처-조선일보 2016.07.0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端甫肄業山寺有寄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新月吐東林(신월토동림)            새 달은 동쪽 숲에 뱉어 나오고

磬聲山殿陰(경성산전음)            풍경 소리 절간 그늘에 울려 나올 때


高風初落葉(고풍초낙엽)            바람이 높이 불어 잎이 막 떨어져도

多雨未歸心(다우미귀심)            비가 많이 내려 귀가할 생각 못 하겠네.


海岳幽期遠(해악유기원)            선산(仙山)에 살자던 약속은 까마득하여

江湖酒病深(강호주병심)            강호에서는 술병만 깊어가겠네.


咸關歸鴈少(함관귀안소)            함관령(咸關嶺) 넘어 기러기 오지 않으니

何處得回音(하처득회음)            돌아온다는 오빠 소식 어디서 들을거나.

[가슴으로 읽는 한시]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여성 문인을 대표하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었다. 
십 대 후반의 동생 허균이 공부에 전념한다고 산사로 들어갔다. 동생이 안쓰러워 안부를 겸해 시를 지어 보냈다.

달이 숲 위로 솟아오르고 풍경 소리 나직한 밤이 되면, 
돌아오고 싶  은 마음 불쑥 일어나겠지.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엄두가 나지 않으리라. 
갑산으로 유배 간 둘째 오빠로부터는 편지가 전혀 없구나.
 
돌아오겠다는 반가운 소식 전할 기러기는 그 높다는 함관령에 막혀 못 오나 보다. 
오빠는 술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겠구나. 

선경(仙境)에 옹기종기 모여 살자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소식 전하니 학업에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 ~ 1589]  네이버캐스트>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학대와 무능하고 통이 좁은 남편,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허난설헌은 건강을 잃고 점차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그 예언은 적중해 허난설헌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지듯이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싸우다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