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7.0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端甫肄業山寺有寄 산사에서 공부하는 동생에게
新月吐東林(신월토동림) 새 달은 동쪽 숲에 뱉어 나오고
磬聲山殿陰(경성산전음) 풍경 소리 절간 그늘에 울려 나올 때
高風初落葉(고풍초낙엽) 바람이 높이 불어 잎이 막 떨어져도
多雨未歸心(다우미귀심) 비가 많이 내려 귀가할 생각 못 하겠네.
海岳幽期遠(해악유기원) 선산(仙山)에 살자던 약속은 까마득하여
江湖酒病深(강호주병심) 강호에서는 술병만 깊어가겠네.
咸關歸鴈少(함관귀안소) 함관령(咸關嶺) 넘어 기러기 오지 않으니
何處得回音(하처득회음) 돌아온다는 오빠 소식 어디서 들을거나.
여성 문인을 대표하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었다.
십 대 후반의 동생 허균이 공부에 전념한다고 산사로 들어갔다. 동생이 안쓰러워 안부를 겸해 시를 지어 보냈다.
달이 숲 위로 솟아오르고 풍경 소리 나직한 밤이 되면,
돌아오고 싶 은 마음 불쑥 일어나겠지.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엄두가 나지 않으리라.
갑산으로 유배 간 둘째 오빠로부터는 편지가 전혀 없구나.
돌아오겠다는 반가운 소식 전할 기러기는 그 높다는 함관령에 막혀 못 오나 보다.
오빠는 술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겠구나.
선경(仙境)에 옹기종기 모여 살자던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까?
소식 전하니 학업에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 ~ 1589] 네이버캐스트>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학대와 무능하고 통이 좁은 남편,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허난설헌은 건강을 잃고 점차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그 예언은 적중해 허난설헌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지듯이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싸우다 전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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