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봤다. 대인배라는 말은 없다. 그냥 ‘대인’이다. 소인배와 짝을 이루는 말도 군자(君子)다. 조선의 의병장으로도 유명한 조헌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군자는 초야에 있고, 소인배가 관직에 있으면 백성이 삶을 누리지 못한다’며 붕당과 학정의 폐단을 논하고 있다. 둘 사이를 일컬어 빙탄지간(氷炭之間)이라 했다. 얼음과 숯처럼 어울릴 수 없는 사이라는 말이다. 군자와 소인배를 두고 훈유, 즉 향기가 나는 풀과 악취를 풍기는 풀로도 비유한다.
▦ 대인은 군자보다 높은 경지에 있는 이를 일컬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종 때 홍문관 부제학 최보한이 주역을 인용해 ‘대인은 수신제가치국 평천하를 이룬 다음에야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임금이 대인의 덕을 쌓을 것을 주문한다. 이쯤 되면 대인은 가히 최고 경지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겠다. 인격과 뛰어난 능력을 겸비했지만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선의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동아시아에만 있는 게 아니다. 폴리네시아나 파푸아 뉴기니, 아프리카 등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이런 유형의 리더를 인류학자들은 ‘빅맨(Big Man)’으로 개념화했다.
▦ 배(輩)는 무리를 뜻한다. 선배(先輩)나 후배(後輩)처럼 중립적 의미로도 쓰이지만 대개는 부정적인 말에 붙이는 접미어다. 폭력배나 모리배, 간신배 같은 경우다. 군자보다 고고(孤高)한 대인에게 붙이기에 적당한 말이 아니다. 언중(言衆)이 이치에 맞지 않아도 말을 만들고, 그 말이 번져 유행어가 되고, 언젠가 표준어까지 넘볼 수도 있겠지만 대인배는 아니다 싶다. 인터넷 시대에 재기발랄한 신어, 조어가 넘쳐 나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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