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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유형진] 혐오의 세계

바람아님 2016. 7. 25. 00:03
국민일보 2016.07.24. 18:37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쥐가 그렇다. 누군가는 바퀴벌레일 수도, 거미일 수도, 여름날 과일껍질의 초파리나 고인물의 모기 유충일 수도, 숲의 바위 사이에 숨어 있는 독사일 수도, 갑자기 산책하던 길에 튀어 올라오는 개구리거나, 오톨도톨한 등을 가진 두꺼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그 어떤 것도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나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저것들은 사실 한번은 마주친 적이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든 사진으로든 처음 마주쳤을 때의 공포가 그것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남기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인상을 주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 선험적으로 ‘그것은 싫다,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으니 피하고 싶다’는 무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충’이라 불리는 곤충이나 설치류, 파충류들은 사실 각각의 생태계에서 살아가려는 것뿐. 인간인 나를 공격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운 나쁘게도 인간의 서식지와 그들의 서식지가 겹쳐지면 방역하는 인간에 의해 인간이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 살게 되었다. 문명화된,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을 선호하는 사회일수록 더 그렇다.


내가 ‘쾌적한 환경’을 원했기 때문에 ‘더러운 것’들은 더 지하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점점 더 더러워지고, 그 세계를 내가 잘 몰라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얼마 전 불거진 대기업 회장의 성매매 스캔들도 나에겐 이런 종류의 혐오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여름날 초파리 유충 정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초파리 유충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나에게도 생각이 있고, 의지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비약과 반어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우리 동네 공원의 늪엔 ‘두꺼비 서식지’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해놓은 곳이 있다.


유형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