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포유류의 섹스 뒤 배란 메커니즘이 기원’
인류의 정기적 배란 뒤에도 남은 현상
번식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어진 기능
인류의 정기적 배란 뒤에도 남은 현상
번식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어진 기능
여성의 오르가슴은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은 숙제였다. 오르가슴은 짝짓기 뒤에 배란을 하는 원시 포유류의 배란 메커니즘에서 기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주인공 샐리로 분한 멕 라이언이 남자친구 해리와 대화하다가, 여성의 오르가슴 상태를 표현하는 장면.
이는 남성이 사정할 때 절정감과 대비된다. 남성의 사정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그 느낌, 즉 절정감이 있다. 이는 남성에게 더 많은 정자를 배출하게 해서 유전자 대물림과 번식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한다. 오르가슴은 분명 여성에게 성관계 대상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근육수축과 호르몬 분비 등 오르가즘 현상의 진화적 뿌리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미국 신시내티대학 의대의 진화생물학자 미하엘라 패블리세브 교수와 예일대의 귄터 와그너 교수는 1일 발간된 <실험동물학저널>에서 1억5000만년 전 초기 포유류는 지금의 인류와는 달리 짝짓기를 하고 난 뒤에야 배란을 했고, 오르가슴은 이런 배란 메커니즘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연구진들은 암컷 포유류들이 짝짓기할 때에 진통 완화 및 모유 분비 촉진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프로락틴을 방출하며, 여성 역시 오르가슴 때 이런 호로몬을 방출하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인류의 여성이 매달 배란을 하는 반면에 토끼나 낙타 같은 포유류의 암컷은 수컷과의 짝짓기를 한 뒤에만 배란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류의 여성처럼 주기적인 배란을 하는 포유류는 소수다. 패블리세브 교수 등 연구진은 처음에 포유류의 조상들은 수컷과의 짝짓기로 촉발되는 배란을 했음을 발견했다. 초기 포유류 암컷들에게 클리토리스는 질 안에 있었다. 인류 등 주기적인 배란을 하도록 진화한 포유류들은 클리토리스를 질 밖으로 옮겼다. 연구진들은 이런 발견에 기반해, 여성의 오르가슴은 처음에 가임을 돕기 위한 반응작용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류의 조상인 초기 포유류는 짝짓기를 할 기회가 적어서 일단 짝짓기를 하면, 이를 가임으로 연결시켜야 했다. 그 메커니즘이란 짝짓기를 한 뒤에 배란을 하는 것이었다. 수컷의 정자가 투입됐을 때 난자를 방출해 수정시켜 가임의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적 자극을 받는 암컷의 클리토리스가 질 안에 있어야 했다. 짝짓기를 할 때 클리토리스가 자극되어 뇌에 신호를 보내, 난자를 방출하고 가임에 필요한 호르몬들을 분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호르몬들은 수정된 난자를 자궁에 착상되는 것을 도왔다. 오르가슴은 이런 원시 포유류의 배란 메커니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인류 등 영장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기적인 짝짓기가 가능해지자, 해당 포유류의 암컷들은 짝짓기 뒤에 난자를 방출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기적인 배란으로 진화하게 됐다. 그러면서 배란 메커니즘인 일환인 오르가슴의 유용성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클리토리스의 위치도 질 안에서 질 밖으로 이동했다. 가임이 가능하지 않을 때 하는 섹스로 쓸데없이 배란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배란 메커니즘이 남아서, 여성의 오르가슴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와그너 박사는 클리토리스의 이런 이동이 진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쓸모 없어진 감각체계 퇴화의 일환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엉뚱한 때에 쓸데없는 잡음을 보내는 오래된 신호체계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2010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36.5%가 섹스를 가진 최근에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는 해부학적으로 보면, 성적 자극을 받는 여성의 클리토리스가 질과 분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최근까지 과학자들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진화론의 자연선택에 따른 생물학적 기능을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진화고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푸츠 교수는 “정서적 차원에서 중요한 오르가슴의 강렬한 쾌감은 번식에 뭔가 중요한 결과를 미친다는 것이 나의 본능적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를 설명하는 많은 가설들이 나왔다. 즉, 오르가슴이 유전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에 의해 여성의 난자가 수정될 확률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인디애나대의 엘리자베스 로이드 교수는 2005년 발간한 <여성 오르가슴의 연구>라는 책에서 여성의 오르가슴 기능에 대한 18가지 이론들을 검토하고는 모두 합당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냈다. 로이드 교수는 여성의 오르가슴은 진화론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최선의 설명이라고 결론냈다. 그는 여성에게 오르가슴이란 남성에게 젖꼭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다른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도 오르가슴에 대한 로이드 교수의 회의론을 강화시켜 왔다.
정의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