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8.2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처녀 적 친구에게 사는 집은 오래된 길가에 있고 | 寄女伴 結廬臨古道(결려임고도) 寒沙初下雁(한사초하안) |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친구에게 편지를 부쳤다.
결혼하기 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말을 전해왔나 보다.
몇 글자 시로 나의 근황을 적어 보낸다.
사는 곳은 큰 길가, 과거로 통해 있어.
집에서는 날마다 앞을 흐르는 큰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
결혼 생활을 말해줄까? 내 거울 속에는 짝 잃은 난새가 늙어가.
동산에 꽃이 피어도 소용없어. 나비 저만 홀로 가을처럼 꽃을 찾지 않고 있지.
나는 늘 혼자야.
강을 바라보니 날이 추워진 모래밭에 벌써 기러기 날아와 앉고, 저녁 비 내려 배도 돌아왔어.
하지만 나를 찾는 이는 없어. 깊은 밤이 돼도 창문 열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 너와 함께 놀던 즐거웠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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