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처녀 적 친구에게

바람아님 2016. 8. 27. 07:23

(출처-조선일보 2016.08.27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처녀 적 친구에게


사는 집은 오래된 길가에 있고
흘러가는 큰 강물을 날마다 본다.
거울 속에서 난새는 시들어 가고
동산에 꽃이 피어도 나비는 벌써 가을이야.
찬 모래밭에 기러기 막 내려앉고
저녁 비 맞으며 배가 홀로 돌아온다.
밤새도록 비단 창문 닫아거노니
옛적에 놀던 일이 어쩜 그리 그리울까?

寄女伴


結廬臨古道(결려임고도)
日見大江流(일견대강류)
鏡匣鸞將老(경갑난장로)
花園蝶已秋(화원접이추)

寒沙初下雁(한사초하안)
暮雨獨歸舟(모우독귀주)
夕紗窓閉(일석사창폐)
那堪憶舊遊(나감억구유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친구에게 편지를 부쳤다. 

결혼하기 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말을 전해왔나 보다.

 

몇 글자 시로 나의 근황을 적어 보낸다. 

사는 곳은 큰 길가, 과거로 통해 있어. 

집에서는 날마다 앞을 흐르는 큰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

결혼 생활을 말해줄까? 내 거울 속에는 짝 잃은 난새가 늙어가.  

동산에 꽃이 피어도 소용없어. 나비 저만 홀로 가을처럼 꽃을 찾지 않고 있지. 

나는 늘 혼자야. 

강을 바라보니 날이 추워진 모래밭에 벌써 기러기 날아와 앉고, 저녁 비 내려 배도 돌아왔어. 

하지만 나를 찾는 이는 없어. 깊은 밤이 돼도 창문 열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 너와 함께 놀던 즐거웠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