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거니촌 노인네

바람아님 2016. 8. 20. 21:38

(출처-조선일보 2016.08.20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거니촌 노인네


산골 노인네 얼굴은 짐승 꼴인데
문 두드리자 웃어대며 맞아들이네.

먼지 찌든 흙집 방을 빗질하고는
도끼로 관솔 쪼개 불을 붙인다.

모래알처럼 따끈따끈한 기장밥에
소금 간한 쑥부쟁이 국을 차리네.

기분 좋게 한 밥상에 밥을 먹고서
누워서는 곡연(曲淵) 길을 물어보노라.

車泥村

面如獸(산수면여수) 

門便笑迎(관문편소영)


凝塵掃土室(응진소토실) 

細斧劈松明(세부벽송명)


沙熱黃粱飯(사열황량반) 

鹽芬紫菜羹(염분자채갱)


欣然同寢食(흔연동침식) 

臥問曲淵程(와문곡연정)





[가슴으로 읽는 한시] 거니촌 노인네
영조 때의 문인이자 서화가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1710~ 1760)은 1754년 무더위가 물러가자 
동해 바다와 설악산으로 여행길을 떠났다. 
인제에서 홍천으로 가는 거니 고개를 넘고 근처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져 아무 집이나 택해 문을 두드렸다.
 
서울 토박이 선비의 눈에는 짐승처럼 보이는 산골 노인네가 나와 생면부지의 과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부산을 떨며 더께 앉은 방을 쓸고 닦고 소나무를 쪼개 관솔불을 피워놓고는 
방금 한 따끈따끈한 밥에다 쑥부쟁이 나물국을 내놓는다. 
초라한 밥상이되 정이 넘친다.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한방에 드러누워 백담사가 있는 곡연 가는 길을 묻고 대답하는 사이 
주인과 과객은 잠이 들고 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