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살 잡고 흔드는 정도로도 의식 잃거나 사망 이를 수도 인간의 몸은 미완의 생명체.. 자칫하면 병들고 고장 나 서로를 아끼고 어루만지며 어울려 살라는 조물주의 뜻
그러던 어느 날 기어이 사달이 났다. 모처럼 진한 회식이 벌어졌고 둘은 술에 취했다. 술자리는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거기서도 김 과장은 반말 투로 신입에게 한마디 했다. 순간 울컥한 신입은 김 과장의 턱을 확 밀쳤다. 그게 다였다. 그 일격에 김 과장은 주저앉았다. 반격이 예상됐지만,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불과 1분도 안 돼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가 김 과장을 싣고 대학병원으로 갔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숨을 거뒀다. 신입은 폭행치사범이 됐다.
시신 부검이 이뤄졌다. 두개골 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다. 뇌출혈 흔적이다. 뺨을 때린 정도의 힘으로 턱을 밀친 사소한 폭력이 어떻게 뇌출혈을 일으킨 걸까. 척추 동맥이 있다. 대동맥에서 나와 목뼈를 따라 위로 올라가서, 두개골 바닥 근방에서 뇌 쪽으로 들어간다. 턱을 옆으로 돌리면 두개골 바닥도 돌면서, 척추 동맥도 살짝 당겨진다. 신입이 김 과장의 턱을 밀쳤을 때, 턱이 휙 하고 돌아갔고, 척추 동맥이 순간적으로 늘어나면서 찢어졌다. 동맥이 새면 피는 순식간에 뿜어 나온다.
법의학적으로 '외상성 척추 동맥 파열 지주막하 출혈'이라고 한다. 이런 폭행 사고는 주로 음주 상태에서 일어난다. 맨정신에서 누군가가 턱을 밀치거나 뺨을 때리려고 하면 무의식적 방어 기전으로 움찔하고 턱과 목뼈 근육을 수축한다. 턱이 휙~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 상태에서는 그런 방어 기전이 약하고, 근육이 유연해져 턱이 세게 돌아가 척추 동맥이 찢어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턱 치니 억 하고' 쓰러지는 경우다. 술자리 시비에서 예상치 못한 사망 사례는 대부분 척추 동맥 파열이다.
어느 아파트 주차장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한 탓에 주차된 차량 앞에 일렬 주차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기어를 중립에 둬서 차를 밀 수 있게 해야 하나 깜박하는 일이 잦아 주민 간에 시비를 부른다. 30대 회사원은 그날 마음이 급했다. 차를 몰고 일터로 빨리 가야 했으나 앞을 막고 선 일렬 주차 차량의 기어는 잠겨 있었다. 경비원을 찾아 부랴부랴 차주를 호출했다. 50대 중반의 차주는 미안한 내색이 없었다. 30대는 한마디 쏘아붙였고 50대는 발끈했다. 말이 거칠어졌고 목소리 톤은 올라갔다. 급기야 30대는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50대가 쓰러졌다. 30대는 50대가 아픈 척 '쇼'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 실려 가 심근경색증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심근경색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다가 막히면서 생긴다. 뛰거나 격하게 움직이면 증상이 나타나지만, 사람은 무의식중에 병적 상태에 적응하여 알아서 살살 움직인다. 관상동맥 경화는 천천히 진행하므로 대개 모르고 지낸다. 그러다 흥분하거나 싸움이 벌어져 교감신경 톤과 혈압이 올라가면 관상동맥 수축이 발생하고 부정맥이 오면서 심근경색증이 일어난다. 30대는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심근경색증 환자와 다툰 것이다. 멱살이 사람 잡은 격이다.
'송장 치고 사람 죽였다는 말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의학적으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사가 체벌한답시고 중학생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가 아이가 쓰려져 사망한 일이 있다. 이른바 심진탕(心震蕩)이다. 뇌진탕이 심장에 온 것으로 보면 된다. 심장은 전기회로 덩어리다. 심장 부위를 가볍게 때렸는데도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부정맥이 올 수 있다. 청소년기에 흔해서 학교 폭력으로 심진탕 사고가 종종 나온다. 비장이나 신장에 혹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옆구리를 쳤다가 복막 출혈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소한 실랑이 이후 통증 감지 회로에 이상이 생겨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옷깃만 스쳐도 아파서 펄펄 뛸 정도로 통증에 엄청나게 민감해진다. 가해자는 꾀병이라며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피해자는 손톱 깎는 것도 너무 아파서 전신마취하에 깎으니 할 말이 없다.
인간의 몸은 언젠가 병들고 고장 나는 미완의 생명체다. 어디에 취약점이 있는지, 어느 곳에 불량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소한 폭력이 비극을 부른다. 하느님이 왜 사랑하면 서로를 어루만지게 했을까. 주먹으로 칠 수도, 발로 찰 수도 있을 텐데. 우리 몸을 나약하게 만들어 놨으니, 서로 살살 다루며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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