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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아버지의 수술

바람아님 2016. 9. 1. 10:26

(출처-조선일보 2016.09.01 따루 살미넨 작가 겸 방송인)


따루 살미넨 작가 겸 방송인오늘 아침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았다. 
늘 나무도 베고 사냥도 하고 힘이 넘치는 아빠의 모습만 봐왔는데 힘없이 튜브들이 연결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빠가 처음으로 약해 보였다. 
뭐든지 해낼 수 있는 수퍼맨의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나이 든 한 인간으로서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아빠가 없으면 집에 따뜻한 물도 안 나오고 어디 고장이 나면 고칠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큰 집에 둘만 사시는 우리 부모님은 앞으로 10~20년 지나면 어떤 삶을 어디서 살고 계실까.
자식들은 일 따라 도시로 떠난 지 오랜데. 엄마가 안 계시면 우리 집의 사과나무, 
자두나무는 누가 돌보고, 꽃밭의 잡초는 누가 뽑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의 이야깃거리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의 건강이 화제다. 
누구는 어머니가 암에 걸렸고, 누구는 아버지가 당뇨병을 앓고, 다들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날 거란 생각을 하면 정말 무섭다. 
나는 성인이 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대학생 같다. 
밥을 할 때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블루베리 파이 어떻게 만들었지?" 물어보기도 하고 집이나 차에 문제가 생기면 
아빠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돼?" 물으며 의지했다.

핀란드의 한 정신과 의사는 "자식과 부모의 역할이 바뀌는 단계는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자식은 늘 믿고 의지했던 부모를 잃어가고, 부모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면서 모두 불안감이 커진다. 
부모는 끝까지 독립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갈수록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한다.

[일사일언] 아버지의 수술
부모는 자식이 크면서 조금씩 관계의 끈을 놓을 줄 알아야 하고, 
자식은 부모가  나이가 들고 약해지면 조금씩 그 끈을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하는 것 같다. 
아빠는 이제 회복할 일만 남았다. 
예전처럼 여러 세대가 같이 지내는 세상은 돌아오기 힘들겠지만, 내 꿈은 부모님 가까이서 함께 사는 것이다.

※9월의 일사일언 필자는 따루 살미넨씨를 비롯, 김은경 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황지원 음악 칼럼니스트, 배우 강석우씨, 배우 길해연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