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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의 서울일기] ⑭ 밤에 틀니 벗어놓듯, 욕망을 내려놓고 살아갈 줄 알아야

바람아님 2016. 9. 10. 23:38
[중앙일보] 입력 2016.08.13 00:42

신촌의 대형 쇼핑몰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생(生)의 의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 프랑크푸르트의 철학자는 인간의 무의식에 웅크린 어떤 의지와 힘, 탐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금도 쉴 수 없게 우리의 삶을 들볶는다고 했다. 성욕, 자기 보존 본능, 사리사욕, 권력 욕구, 변덕스러운 욕망, 소비 충동. 과연 우리 삶을 움직이는 진정한 추동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끈질기게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결핍감의 비굴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가능할까. 언제 어디서나 맹목적으로 작동하는 생의 의지는 권태와 불만 사이를 쉴 틈 없이 오가도록 우리를 몰아붙인다.

계산대 앞에 길게 이어진 줄을 보면서, 또한 머릿속에 곱씹어 본다. 쇼펜하우어에게 이 세상은 윤리적인 관점에서는 떼강도의 소굴이요, 지성의 관점에선 정신병자 수용소이며, 미학의 관점에서는 주정뱅이들이 우글대는 주막이다. 그런 만큼 진정한 연대의식 회복과 인간미의 고양, 내적 아름다움의 추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쓴 이 대단한 철학자는 우리가 비관주의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지 않고, 외적 상황의 노리개로 만드는 모든 의존성과 노예근성을 벗어 버리도록 도와준다.

존재의 본질을 불안정하다고 보는 쇼펜하우어는 우리더러 속도를 늦추라고 말한다. 우리를 채근하는 욕망이란 결코 스승이 아니며,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함을 역설한다. 우리 안에 결코 만족을 모르는 부분, 위로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현실과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시도할 수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소모를 중단하고 세상에 연연하기보다는 내면으로 눈을 돌려 그 혼돈을 관조할 수 있다.

자꾸만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행복을 좇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누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붐비는 백화점, 지하철, 식당 그 어디에 당신이 있든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라.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갈망과 불안에 떨게 만들던 그 모든 일들, 오늘은 어떤가. 자신에게서 조금은 관심을 떼어내 보다 넓은 세계로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사물에 대한 편협한 관점, 삶을 바라보는 제한된 시각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기. 밤이 되면 자연스레 틀니를 벗어놓듯 우리의 에고(ego)도 그렇게 내려놓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목적지 없는 산책에 나서 보자. 왜냐는 물음 없이 거리를 걸어 보자. 이번 시즌 신상품을 사려고 악착같이 줄을 선들 삶의 기쁨이 내 차지가 될까. 진짜 기쁨은 더 많은 이웃의 행복을 돕는 데서 오는 법.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이웃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것처럼 고귀하고, 힘차며, 멋진 일이 또 있을까.

상점을 훑으며 우리가 찾는 모든 것은 사실 우리 안에 이미 들어차 있다. 그것을 퍼 올려 남들과 나누는 일이 필요할 뿐. 그 사람들을 적으로 보고, 내가 아닌 남으로만 보는 태도가 불필요한 욕망으로 내 눈을 멀게 한다. 우리 모두 한배를 타고 있음을 깨달아야 마음의 욕심과 적의를 떨칠 수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백화점을 나서면서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문득 행복은 바로 이곳에 있다며 내게 윙크하는 쇼펜하우어의 얼굴을 본 듯하다. 불필요한 집착을 버리고 경쾌한 마음가짐으로 어서 삶의 춤과 하나 되어 보자는 초대의 손길이 반짝하고 빛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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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