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4.04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게리 폴 나브한 '지상의 모든 음식…'
7000~8000만명의 인류가 사망한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인은 2700만명, 중국인은 1500만~2000만명이 이 전쟁에서 죽었다.
흔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해 연합군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천만명의 소련인과
중국인의 희생을 통해서 독일과 일본의 야망을 꺾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특히 스탈린과 히틀러라고 하는 두 개의 거대한 악(惡)이 충돌했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특히 스탈린과 히틀러라고 하는 두 개의 거대한 악(惡)이 충돌했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방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전투 가운데에서도 가장 참혹한 것이었다. 거의 50만명의
희생을 해서 소련은 레닌그라드를 지켜냈다. 이때부터 연합군은 승기를 잡게 된다.
당시 레닌그라드에는 '바빌로프 식물산업연구소'라는 기관이 있었다.
식물학자인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평생을 바쳐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수집한 40만 개의 식물 씨앗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독일군에게 도시가 포위된 1942년 겨울 당시 바빌로프는 '서방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된 상태였다. 스탈린의 허황된 농업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었다.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
(15개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를 누빈
위대한 식량학자 바빌로프 이야기)
개리 폴 나브한/ 강경이/ 아카이브/ 2010/ 311 P
연구원들은 씨앗을 지키기 위해 연구소를 폐쇄한 뒤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아홉 명이 병과 굶주림으로 건물 안에서 죽어갔지만, 이들은 귀중한 씨앗을 먹지 않았다.
당시 씨감자를 지켰던 바딤 레흐노비치에게 전쟁이 끝난 뒤 누군가 물었다.
"몇 달을 굶주리면서도 씨감자를 먹지 않고 견디는 게 힘들지 않았냐"고.
레흐노비치는 이렇게 답했다.
"일하는 게 힘들었죠. 매일 아침 일어나기도 힘들었고 손발을 움직이기도 몹시 힘들었답니다.
하지만 씨앗을 먹지 않고 견디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걸 먹는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씨앗에는 나와 내 동지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들어 있었으니까요."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으면,
게리 폴 나브한의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읽으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마음속에 깃든 사명감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구원들은 '인류(人類)'를 위해 죽어간 성자(聖者)들에 가깝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또 하나의 한국 '마석'… '새로운 한국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0) | 2016.09.11 |
---|---|
[졸리앙의 서울일기] ⑭ 밤에 틀니 벗어놓듯, 욕망을 내려놓고 살아갈 줄 알아야 (0) | 2016.09.10 |
[철학이야기] 마음의 중심 잃지 않았기에… 두 나라 화해하게 됐어요 (0) | 2016.08.14 |
[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그들은 왜 '그랜드 플랜'을 비겁하게 여겼나 (0) | 2016.08.14 |
[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혼밥’의 지혜 (0) | 2016.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