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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삶에 지친 한국인 의지할 곳도 없어 술에 기댄다

바람아님 2016. 10. 13. 05:51
국민일보 2016.10.12. 00:03 

OECD '2016 사회지표'
작년에 직장을 구했고 다음 달 결혼할 예정인 A씨(33)는 예비신부와 논의한 결과 당분간 자녀를 두지 않기로 했다. 신혼 전셋집 마련에 들어가는 대출금을 충당하면서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늦게 취직한 만큼 모아놓은 돈도 없다. 2년째 취업준비 중인 두 살 터울 친동생의 뒷바라지 문제도 마음에 걸렸다. A씨는 “요새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그 어느 때보다 공감된다”고 한탄하며 한숨을 쉬었다. 과거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에 근무했던 A씨의 아버지는 “젊은 사람이 패기가 없고 나약한 소리부터 한다”고 질책한다. 60대 중반의 A씨 부모는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일을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A씨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의 웬만한 가정 모습이 이렇듯 빠듯하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 고령층은 헬조선이라는 용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려움 없이 자란 젊은 세대의 자기비하적 표현’이라고 몰아가기에는 곳곳에서 이를 방증하는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인들은 삶이 힘들다고 느낀다. OECD가 최근 발표한 ‘2016 사회지표’를 보면 한국은 삶의 만족도는 5.8점으로 OECD 평균 6.5점을 크게 밑돈다. 35개 회원국 중에선 28위다.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적은 칠레(6.5점) 멕시코(6.2점) 폴란드(6점)의 만족도도 한국보다 높았다.


지인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얘기도 한국인에게는 낯설지 않다. 한국의 2014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독보적인 1위다. OECD 평균은 12명이다. 2위 일본(18.7명)과도 큰 격차를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커녕 주변 사람조차 신뢰하지 못해 기댈 곳이 없다. 한국인의 72%만이 “어려울 때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고 답해 OECD 평균 85%에 비해 13% 포인트 낮게 나타났다. 타인에 대한 신뢰에서도 OECD 국가 평균인 36%를 밑도는 26.6%에 불과했고, 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28%에 그쳐 OECD 평균 42%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신혼부부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합계출산율 1.21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노인들이 큰 폭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의 절반은 빈곤층으로 살아간다. 우리 인구 전체 빈곤율은 14%로 OECD 평균 12%보다 조금 높지만 65세 이상 인구의 빈곤율은 48.8%로 1위다.

시름을 술로 달래면서 음주량은 증가했다. 15세 이상 인구의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 기준으로 OECD 국가의 평균 음주량은 2000년 9.5ℓ에서 2015년 8.9ℓ로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2000년 8.9ℓ에서 2015년 9.0ℓ로 상승했다.


세종=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