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0 김은경·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지난 일요일 암사동 선사 주거지에 갔었다.
그곳에는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집터와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참나무와 소나무,
잣나무가 자라고 있다. 암사동 선사 주거지를 자주 찾는 건 신석기 시대 역사 공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무가 많고 넓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공간이란 이유도 있다.
이날도 전시실을 둘러본 후 밖에서 놀고 있었다. "청설모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한쪽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발견한 것은 잣나무를 뛰어다니는 청설모였다.
산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귀여운 다람쥐와는 달리 청설모는 색깔부터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비호감이라는 청설모가 몹시 부럽다. 특히 잣나무의 잣이 익어갈 요즘이면 더욱 그렇다.
가을이면 잣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잣송이를 찾아 헤매고, 청설모가 잣송이를 떨어뜨리길 기다리곤 했다.
운이 좋으면 청설모가 떨어뜨린 잣을 얻는 일도 있었다. 잣송이를 획득했을 때 청설모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양손에 송진을 묻혀가며 잣송이를 까고, 겉껍질을 벗겨서 얻은 하얀 잣을 병에 담았다.
돈을 주고 잣을 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그윽한 솔향기와 함께 찾아온다.
1분 만에 잣송이 하나를 다 까는 현란한 재주를 가진 청설모의 긴 발톱이 갖고 싶었던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
청설모는 한자로 청서(靑鼠)라고 한다.
쥐목 다람쥣과에 속하는 청설모는 등의 털색이 회색에서 갈색 또는 붉은색까지 변이가 심하다.
배는 흰색이고 귀의 끝부분에는 뿔처럼 긴 털이 나 있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청설모는 겨울철에 먹기 위해 식량을 저장한다.
종종 저장한 먹이를 찾지 못하고 방치하는데 이듬해 이들이 싹을 틔우기도 한다.
청설모가 가장 좋아하는 잣을 비롯해 호두, 밤, 오동나무 열매, 도토리 등이 그것이다.
기억력 나쁜 청설모 덕분에 새로운 생물들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잣나무가 자라는 도시 공원에는 겨울 준비에 바쁜 청설모가 살고 있다.
그들을 반갑게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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