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1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 한 단락을 소개한다.
"지극한 사람은 헐뜯음과 기림에 대처할 때 사실과 거짓에 관계없이 모두 배불러하지도 않고
목말라하지도 않으며, 가려워하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는다.
보통 사람은 진짜로 하는 칭찬과 진짜로 하는 비방에도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니 근거 없이 해대는 칭찬이나 잘못이 없는데 퍼붓는 비방에 있어서이겠는가?
사실이 아닌데 받는 칭찬은 꿈속에 밥을 더 먹는 것이나, 그림자를 손톱으로 긁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잘못이 없는데 받는 비방은 꿈속에 목마른 것이나, 그림자 위에 몽둥이로 맞는 것과 한가지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만 꿈에서 밥을 더 먹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강퍅한 인간은 그림자를 몽둥이로 때려도 유감으로 여긴다
(至人之處毁譽也, 無論眞與假, 皆不飽不渴, 不癢不痛. 平人不能善處眞譽眞毁,
况無宲之譽, 無過之毁乎. 無宲之譽, 何異乎夢中飡加, 影上爪爬, 無過之毁,
何異乎夢中漿乏, 影上棒打. 痴人惟幸飡加於夢, 愎人猶恨棒打其影)."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세상의 칭찬과 비방은 네 가지 중 하나다.
좋은 일을 해서 칭찬받는 경우와, 야단맞을 짓을 해서 비방을 부르는 경우가 처음 두 가지다.
나머지 둘은 잘한 일 없이 얼떨결에 받는 칭찬과,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난이다.
처음 둘은 당연한데, 나중 둘은 불편하다.
사람의 그릇은 나중 둘의 상황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제가 받을 칭찬이 아니면 부끄러워 사양해야 마땅한데 모르는 체 업혀간다.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았으면 떳떳해야 하건만 눈치를 보며 주눅이 든다.
공연한 칭찬은 그림자 위를 손톱으로 긁기(影上爪爬 영상조파)다. 가려운 발을 안 긁고 그림자를 긁으니 시원할 리가 없다.
근거 없는 비방은 그림자를 몽둥이로 때리기(影上棒打)다. 때리는 손만 아프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못난 인간은 꿈속에 밥 한 그릇 더 먹었다고 배부르다 하고, 강퍅한 인간은 몽둥이가 제 그림자에 스치기만 해도
두고 보자 한다. 사실에 관계없이 칭찬에 우쭐대고 비난에 쩔쩔매다 제풀에 제가 넘어간다.
훼예(毁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정신의 힘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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