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22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산업디자인)
알래스카 남동쪽의 부동항 수어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주변에 이 주(州)를 상징하는 깃발을 디자인한 사람을 추모하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1867년 제정(帝政)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720만달러(현재 가치 약 1410억원)에 팔아넘겼다.
알래스카는 면적이 152만㎢(한반도의 약 7배)에 달하지만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러시아는 골칫덩이를 없앴다고
좋아한 반면, 남북전쟁을 막 끝낸 미국에서는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Seward)가 혈세로 냉장고를 사는 바보짓을 했다는
비난이 거세었다.
그러나 금, 석탄 등 지하자원이 발견되자, 세기적인 거래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서 그의 이름을 딴 항구가 생겼다.
미국 알래스카 주의 로고. 디자이너: 베니 벤슨(Benny Benson), 1927년 공모로 선정.
1926년 알래스카의 정치 책임자 조지 폭스는 장차 미국의 한 주로 승격될 것에 대비해 상징 깃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1월 알래스카에서 7학년부터 12학년(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사이 재학생을 대상으로 디자인 공모를 시작했다.
수어드의 한 고아원에서 동생과 함께 어렵게 생활하던 7학년생 베니 벤슨은 알래스카의 북쪽 밤하늘을 수놓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주제로 깃발을 디자인했다. 벤슨은 파란색 바탕은 알래스카의 하늘과 물망초의 색깔, 북극성은 미국의
가장 북쪽 주가 될 알래스카의 미래, 북두칠성은 힘의 상징인 큰곰을 의미한다고 그의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했다.
심사위원회는 출품작 700여 점 중 벤슨의 작품이 알래스카의 정신이 잘 깃든 디자인이라 평가하고 금상을 수여했다.
부상(副賞)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로고가 새겨진 손목시계를 받은 벤슨은 장학금 1000달러 덕분에 비행기 엔진 기술자가
되었다. 1959년 알래스카가 미국의 49번째 주로 승격됨에 따라 그 깃발은 주 정부의 공식 상징으로 채택됐다.
진정성을 담은 디자인으로 운명이 바뀐 벤슨의 해피엔딩 스토리는 억지로 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文學,藝術 > 디자인·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아한 백제 건축의 진수 '치미'를 아시나요 (0) | 2016.11.04 |
---|---|
[서울 빌딩 스토리]㉞ "조선총독부보다 높아야 해"..돔 얹은 동양 최대 국회의사당 (0) | 2016.10.31 |
요상한 건물들의 '첨단 비밀' 아시나요 (0) | 2016.10.19 |
베일 벗은 페북 새 사무실 "한폭의 그림" (0) | 2016.10.19 |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08] 불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0) | 2016.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