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시대 ◆
일본이 재빨리 뛰어가고 있다면 한국은 아직 웅크리고 앉아서 신발끈도 제대로 못 묶는 답답한 모습이다. 선거 캠페인 기간 내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을 주장한 트럼프가 당선된 만큼 한국 입장에선 경제·통상·외교안보 전반에 걸친 대격변이 예상된다. 하지만 국정 공백과 리더십 불안에 시달리는 청와대와 정부는 한 박자 느린 대응으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청와대와 외교당국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10일 오전 10시부터 약 10분간 전화 통화를 하며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당선자는 "한국과 미국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할 것이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20여 분간 통화한 것은 물론 일주일 뒤인 오는 1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트럼프 당선자와 회담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일정까지 조율 중이다. 아베 총리는 오는 19~20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뉴욕에 들러 트럼프 당선자와 만날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하고, 트럼프 당선자와 회담 일정조차 논의하지 못하는 상황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지난 9일 트럼프 후보 당선 직후 외교담당 총리보좌관에게 14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하도록 지시하는 등 차기 트럼프 행정부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쾌속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외교부는 이날 "조속한 시일 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유관 인사들의 방미를 통해 트럼프 당선자 측 외교·안보 인사들과 협의를 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일정을 못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측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진용이 갖춰지는 대로 정부가 군사동맹과 경제·통상 현안 등에 대해 적극 설명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는 주문이다. 이들은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직 인수위가 가동되고 새로운 행정부가 전반적 외교·경제 정책을 검토·조정하는 향후 100일 이내에 특사 파견 등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대응과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정부 부처들이 종합적으로 대미 안보·통상 문제를 재검토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냉정하게 검토하는 대미 전략 페이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관계부처가 (태스크포스를 꾸려) 정리를 해서 미국에 우리 입장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 역시 차분하게 한국 측 논리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진 전 총리는 "불안감에 휩싸여 부화뇌동하기보다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분석해 한국 측의 설명 논리와 대응 방안을 정교하게 수립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냉정함만 유지하면 어떤 경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며 "일단 정돈되지 않고 있는 경제사령탑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김성훈 기자 / 전정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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