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당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자 LA타임스는 “프레너미(Friend+Enemy)가 왔다”고 외쳤다. 친구인 척하는 적이 왔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5대 대통령 당선인을 맞는 중국의 시각 역시 프레너미다.
선거 기간 13억 중국인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은 2000년 트럼프 대통령을 예측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은 당(唐)나라 이백(李白)이 트럼프 승리를 예상한 오언절구를 지었다고 주장한다. 냇물은 쉬지 않고 흐른다는 성어 ‘천류불식(川流不息)’을 빗대 ‘트럼프는 남고 힐러리는 안 된다(川留不希)’고 외쳤다. 트럼프의 큰딸 이방카도 중국에서 인기다. 네티즌 1만9000명이 이방카의 웨이보(微博·중국식 트위터)를 팔로잉하며 소통했다.
셈이 빠른 중국은 트럼프를 친구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타협을 아는 기업가란 이유에서다. 인권·가치를 앞세운 힐러리는 적대시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발 빠르게 축전을 보냈다. “최대 개발도상국과 최대 선진국, 세계 1·2위 경제체인 미·중 양국은 광범위한 공동 이익을 갖고 있다”며 이익을 앞세웠다. 8년 전 “인류 복지와 관련된 여러 중대한 문제…”로 시작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버락 오바마 당선 축전과 달랐다. 굴기(?起·우뚝 섬)한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상호 존중하고 협력 공영의 원칙을 견지하자”며 트럼프에게 ‘신형 대국 관계’를 압박했다.
오바마 인수위에 참가했던 제프리 베이더 전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당시 아시아 전략 초점을 지역 강대국 중국의 부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맞췄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전후로 중국은 미국의 ‘관리’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자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내놓았고 일본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로 중국과 맞붙었다. 시 주석은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을 둘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며 오바마에게 아시아·태평양을 ‘공유’하자고 요구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동향에 정통한 소식통은 “시진핑 등장 후 워싱턴 친중·지중파의 입지가 사라졌다”며 “중국 견제론자가 대중(對中) 정책 시장을 장악했다”고 진단한다. 아무리 아웃사이더 트럼프라도 대세를 외면하긴 힘들다.
베이징의 셈법은 다르다. 스인훙(時殷弘) 런민대 교수는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외교 카리스마가 부족해 반(反)중국 진영을 결집시키기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전략적 기회는 부차적”이라며 “트럼프의 당선이 중·미 경제·무역 관계에 손상을 입힌다면 중국은 더욱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문제는 한국이다. 트럼프와 제대로 교류한 한국인은 프로골퍼 최경주가 유일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중에 시혜(施惠)만 요구해 왔던 외교로 트럼프·시진핑 프레너미 시대를 견딜 수 없다. 굳건한 자주 국방과 경제, 무엇보다 무너진 국격의 복원이 우선이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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