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오늘 시민과 경찰을 위한 기도

바람아님 2016. 11. 19. 07:09

(조선일보  2016.11.19 안석배 논설위원)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내자동 로터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긴장감이 더했다. 

시위대와 맨 앞에서 대치 중인 의경들 헬멧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무거운 진압복을 입은 스무 살 젊은이들은 광장에서 밀려오는 인파를 보며 긴장한 표정이었다. 

청와대 앞까지는 불과 900m. 일부 시위꾼이 대열 앞 의경을 한 명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방패를 빼앗긴 의경도 보였다. 복면 쓴 시위대가 깃대로 의경을 때리려 하자 누군가 외쳤다. 

"의경은 때리지 마세요." 시민들 함성이 퍼져 나갔다. "평화 시위!" "평화 시위!" 


▶이날 시위 현장에 배치된 의경 아버지의 글이 엊그제 조선일보 여론면에 실렸다. 

그는 "12일 시위를 TV로 지켜보다가 흠칫 놀랐다"고 했다.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내자동 로터리에 아들 의경 중대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시위대와 의경 간 몸싸움이 격렬해지는 걸 보며 "새벽 4시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새벽 6시 반 임무 끝내고 복귀했다는 아들 전화를 받고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수준 높은 시위 문화에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만물상] 오늘 시민과 경찰을 위한 기도


▶많은 의경 부모가 한 달째 이어지는 촛불 정국에 가슴 졸이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걱정과 기도가 가득하다. 

'주말이 즐거워야 하는데… 또 주말이네요' '제발 다치지 마라' '오늘(12일) 전쟁터에 아들 보내는 심정입니다' 

'아무 일 없길 기도한다, 아들아'…. 금요일만 되면 의경 엄마·아빠들 댓글이 유난히 많이 달린다. 


▶오늘 전국적으로 4차 촛불 집회가 열린다. 

애초 서울 광화문 집회 인원은 지난주 절반 정도로 예상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미루고, 2선 후퇴 대신 슬그머니 업무 복귀를 하면서 시위 나가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한다. 

화난 민심이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른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광장에 불붙여 놓고 어둠이 깔리면 철수하고 만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진 동독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였다. 

비밀경찰의 삼엄한 탄압에 맞선 시민들의 유일한 무기는 '평화적 촛불'이었다. 

당시 퓌러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촛불을 들려면 두 손이 필요했습니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가려야 하기 때문이죠. 

촛불을 쥔 손으로는 돌멩이와 몽둥이를 들 수 없습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전 세계가 한국인들의 평화롭고 질서 있는 시위에 놀라고 있다. 

이런 시민 의식이 어떤 폭력보다 더 무겁게 저들의 국정 농락을 단죄할 것이다. 

그런 시민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