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기자의 시각] 힐러리 선거본부의 편지

바람아님 2016. 11. 20. 17:51

(조선일보 2016.11.19 최보윤 문화부 기자)


처음엔 '행운의 편지'인 줄 알았다. 

"친구들이여. 감사합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해주셔서…". 

이메일을 보낸 이는 로비 무크(Mook). 모르는 사람이다. 제목도 그냥 'Thank you.' 이메일을 클릭했다.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와 전 세계에 힘든 나날이 계속될 수 있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진정한 패배는 이번 싸움에 실망해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구인데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궁금해 구글에서 이름을 검색해 봤다.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본부장이었다. 

미국에 머물던 지난 6월 '힐러리와 점심을' 광고를 클릭했다가 연결된 선거 캠페인 사이트에서 '후원금 내기'를 보고 

호기심 때문에 동의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투표 전날까지 클린턴, 오바마 등의 이름으로 짧은 의견과 함께 5달러, 

10달러 등 소액 기부를 독려하는 이메일이 꾸준히 왔다. 패배 확정 뒤 첫 이메일은 힐러리가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표한 글이었고, 다음은 힐러리의 육성 녹음이 담겨 있었다. 

그 뒤를 이 편지가 이었다.


"몇 가지 해볼 만한 게 있습니다. 

1. 지역사회를 위해 뛰어주십시오. 변화를 이룩할 최선의 방법은 지역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2. 민주당을 위해 싸워주십시오. 어느 때보다 여러분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3. 여성과 여자아이들을 지지해주십시오. 그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묻고 될 수 있는 한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4. 사랑하는 마음과 친절을 더욱 키우십시오. 힐러리는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선(善)을 행하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척도는 그가 어떻게 무너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회복하느냐에 있습니다."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패배란 가장 상상하기 싫은 단어였을 것이다. 

'슬픔과 함께 살기(Living with grief)'의 저자 마르시아 라탄치-리히트는 

"사람들이 가진 꿈과 가치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겪는 공공 또는 국가적 슬픔과 분노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 못지않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반대 시위를 벌인 이들이 SNS에 올린 글에는 "시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힐러리 선거본부의 편지 글 어디에도 공분을 자극하는 거친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위로를 나누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대선 이후 미국 민심 못지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이나, 그러지 않았던 이들 모두 상처 입었다.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밑바닥까지 발을 디뎌본 뒤에야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무너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는 말을 다시 새기게 된다.